마침내 드러난 노 대통령의 대선 전략 속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무현(사진) 대통령이 7일 현 범여권 상황 분석과 속에 품고 있던 대선 전략을 꺼내놨다. 그가 이날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이른바 '호.충(호남+충청)지역연합 환상론'이다. 그는 "지역정치는 호남의 소외를 고착시킬 것"이라며 "호남-충청이 연합하면 이길 수 있다는 지역주의 연합론은 환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상대가 분열하지 않는 한 호남-충청의 지역주의 연합만으론 성공할 수 없다"며 "지난 두 번의 (대통령)선거를 정확하게 따져보면 분명해진다. 현실 승부에서도, 역사에서도 승리할 수 없는 길"이라고 적었다.

이런 노 대통령의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주장은 맞는 얘기일까.

실제 노 대통령은 최근 이 문제를 놓고 청와대 안팎 참모들과 여러 차례 토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은 지난 두 번의 대통령선거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고 한다.

첫째, 1997년 김대중 후보의 당선은 DJP(김대중-김종필)연합, 즉 호남-충청의 연합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인사는 "당시 DJP연합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인제 후보의 탈당과 출마로 한나라당 표가 쪼개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둘째, 2002년 노무현 후보의 당선 역시 호남의 '노무현 밀어주기'와 충청 지역의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이익 투표'만으로 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핵심 인사는 "정몽준 후보를 노 후보 쪽으로 끌어올 수 있었던 게 대선 승리의 견인차였고, 이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분열 효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노 후보가 영남 출신인 효과가 작용해 영남 투표자의 30%가 한나라당 후보를 찍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영남의 분열이 호.충 지역연합 승리의 전제였다는 얘기다.

결국 노 대통령은 지난 두 번에 걸친 대선 승리의 키워드를 '상대방의 분열'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는 "결국 상대방의 분열보다 더 큰 승리 요인은 없다"며 "한나라당이 또다시 분열될 수 있고, 얼마든지 맞춤형 후보를 통해 지난 두 번과 같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대통령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동영.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김한길 통합신당 대표, 민주당 등 범여권이 추진하겠다는 통합의 노선은 '호남-충청 연합 필승론'이다. 호남 출신의 고건 전 총리, 충청 출신의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을 유력 후보로 내세우려 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래서 여권 내 반노 그룹은 노 대통령이 유시민 장관, 김혁규 의원 같은 경상도후보론이나 영남신당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글에서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져도 된다고 생각한다''내년 총선을 위해 영남신당을 만들려고 한다'는 건 한마디로 모함이다. 대통령의 얘기를 함부로 왜곡해선 안 된다"며 "20년간 고수해 온 정치인 노무현의 원칙과 배치된다"고 반박했다.

이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