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미관계 "미「대국주의」가 최대걸림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80년대 들어 한국인들의 미국을 보는 시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을 우호적으로 보는 한국인의 비율은 1984년의 70%에서 현재는 겨우 24%에 불과할 정도로 급락했다. 이 같은 반미감정 확산원인과 향후 한미관계의 양태를 실증적으로 분석·전망한 연구서가 나와 주목을 끈다.
화제의 책은 경북대 김진웅 교수의 『한국인의 반미감정』(일조각 간).
김 교수는 이 책에서 각종 여론조사, 양국 주요인사들의 발언, 미국측 자료 등을 토대로 반미감정의 확산원인으로 ▲광주사태 ▲권위주의 정권지지 ▲무역마찰 ▲증대되는 한국인의 민족자긍심 ▲주한미군 등을 꼽았다. 한국에서의 반미감정 대두는 빠른 경제성장, 성공적인 올림픽개최 등에 의한 한국인들의 자신감 증대, 대외관계에서의 자주의식 성장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또 향후 한미관계는 기존의 일방적 수직형에서 벗어나 완만한 속도로 수평형을 향해 나아가는 사선형의 형태를 띨 것으로 내다봤다.
80년대 이전 한국인들의 대미인식은 맹목적인 친미일색이었다. 구한말이후 미국이 보여준 외견상의 호의와 엄청난 국력이 미국을 「해방자」 「구원자」 「은인」으로 인식하게 만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80년5월 광주사태당시 신 군부의 행동을 묵인한 미국의 현실주의 정책과 그후 권위주의 정권인 5공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가 국민 속에 반미감정이 자라게 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고, 90년 말부터 가중된 쌀시장 개방 등 통상압력이 반미감정의 확산을 더욱 부채질했다고 김 교수는 풀이한다. 나아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하락한데 반해 한국의 국제적 지위는 급신장, 한국인들 사이에 민족자긍심이 고양됨으로써 기존 한미간의 「보호자·피보호자」관계에서 대등한 동반자적 관계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인들이 미국의 실체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으며 국제관계는 자국의 이해에 토대를 둘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뒤늦게 깨달은 징표』라며 『반미감정은 한반도의 대내외적인 상황변화에서 기인하는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못박는다.
이 때문에 가까운 장래의 한미관계는 양국간의 무역경쟁, 한국에서 고조되는 민족주의, 미국 군사력 및 경제력의 상대적 감소, 그 결과로 나타나는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약화, 과거의 대미종속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 등이 겹쳐 알력과 갈등은 계속될 것이라고 김 교수는 진단한다.
즉 한국의 대미 의존도가 줄어들게 됨으로써 종전의 혈맹관계 대신 경제적인 상호 의존관계에 바탕한 새로운 알력관계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매우 정상적인 상태에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 한미 양국이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것은 반공이라는 「공동의 이해」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양국의 정치인들은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냉전종식으로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고 경제문제가 관건이 될 앞으로의 한미관계는 반공을 대신할 만한 「공동의 이해」가 존재하기 힘든 만큼 한국인들 사이에 미국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의식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자리잡아가고 미국이 쌀시장 개방압력처럼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울 경우 반미감정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김 교수는 한미행정협정 개정, 용산 미군기지 이전, 작전통제권 이양, 최근의 과소비운동 금지요구 등에서 나타나는 미국인들의 뿌리깊은 대국주의가 향후 바람직한 한미관계 정립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최형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