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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불 전도사' 딱지 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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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 부총리는 재임 기간도 긴 행운을 누릴 것 같다. 취임한 지 벌써 8개월째다. 노무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할 경우 내년 2월까지 17개월을 재임하게 된다. 1993년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세 명의 대통령 아래서는 17명의 교육부 장관이 거쳐갔다. 이들의 재임 기간은 평균 9개월에 불과하다. 현 정부에 임용됐던 5명의 재임 기간도 평균 8개월이 안 된다.

김 부총리는 언론의 보호도 받았다. 대입수능 부정사건(안병영), 외국어고 정책 혼선(김진표), 논문 도덕성 논란(김병준) 등으로 호된 비판을 받은 전임자들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한동안 언론을 피했다. 언론도 "맛이 없다"며 외면했다. 교장선생님처럼 말은 장황한데 거리가 될 '영양가'는 적었기 때문이다. 언론의 관심이 싸늘하자 교육부는 '동정란' 게재까지 부탁했을 정도다.

그런 김 부총리가 요즘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다. 노 대통령이 3불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절대사수를 강조한 3월 이후 홍보 총대를 메고 말을 쏟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앵무새 투어'를 한다는 것이다. 4일 광주.전남지역 총장들과의 간담회에서는 "대학이 입시로 하급학교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압박했다. 3일 전북교육청에서는 "대학이 원하는 방식으로 학생을 뽑으면 공교육은 파행된다"고 말했다. 9일 경기도, 11일 제주도에서도 같은 강의를 한다. 지난달 서울 이화여고에서 첫 강연 때 했던 똑같은 말을 장소만 바꿔가며 한 달째 하고 있는 것이다.

김 부총리의 8개월 성적표는 '별로'다. 교원평가제나 로스쿨법, 국립대 법인화 등 어느 것 하나 된 게 없다. 정치권 탓만 할 게 아니라 국회를 찾아가 읍소라도 해봤는지 묻고 싶다. 매일 밤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획일화된 평준화 교육을 등지고 조기유학을 떠나는 아이들, 스승의 날 제자들에게 등교하지 말라고 하는 교사들…. 그런 현장을 보고 해법을 모색할 시간도 부족할 텐데 무슨 '앵무새 투어'란 말인가.

평생의 교육철학을 소신껏 펼 것으로 기대했던 분이 '충성'에만 올인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행운의 남자' 비유가 언짢다면 정말 제대로 된 '김신일 브랜드'를 보여 달라. 당장 '서울대 사대 마피아' 오명을 깰 인사혁신부터 해보시라. 교육정책을 주무르는 핵심 간부직을 서울대 사범대 출신 선후배가 독점해 '예스맨'만 가득한 조직을 언제까지 놔둘 셈인가.

서울고법 판결과 국회를 통과한 교육정보공개법대로 수능성적과 학교별 학업성취도를 공개하는 용단을 보여주시라. 교사 간, 학교 간 건강한 경쟁을 이끄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학생.학부모.대학도 모두 박수를 치지 않겠는가. '김신일=3불 전도사'딱지를 떼려면 두 가지만이라도 꼭 실행에 옮기시라. '행운의 남자'가 아닌 '강단 있는 부총리'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