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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표방 리얼리즘의 잣대 버려라|저작권 무시한 표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중앙일보 5월28일자에 실린 김동욱씨의 재반론「리얼리즘의 잣대를 버려라」와 견해를 달리한다.
이인화씨의 소설『내가 누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기법이기 때문에 표절이 아닌 새로운 창작형태라고 하는 김씨의 글은 퍽이나 억지스러운 느낌이 있다. 현재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작품의 표절여부에 대한 것이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찬반 논쟁이 아니다. 모든 포스트모더니즘이 남의 것을 도용하는 형식은 아닐 것이고, 반대로 리얼리즘계열이라고 해서 표절시비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때문에 「모든 작품은 다 남의 작품에서 베껴온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김씨의 글은 놀랍다. 그의 주장에 따른다면 적어도 포스트모더니즘계열의 작품에 한해서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저작권법에 의거한 법적 권한은 전혀 가치가 없는 것, 내지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예술의 독창성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러한 회의는 누구나 느낄 수도 있고, 반대로 느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모든 예술이 독창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의 작품을 도용한다』는 주장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김씨가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표절을 합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그의 말대로 과거에도 표절은 있었다.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표절시비는 끊이지 않았다(가깝게는 움베르토에코의 『장미의 이름』까지). 왜 그렇겠는가. 그것은 대중들이 작가에게 기대하는 가장 큰 덕목으로 양심을 꼽기 때문이다.
독자는 작가의 글을 통해서 김씨가 주장하는 기교나 기법 같은 것들보다는 살아있는 양심을 더 보고 싶어한다.
이인화씨와 같은 젊은 작가들이 자꾸 표절시비에 휘말리는 근래의 풍조가 안타깝다. <김광호(경기도 고양시 관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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