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내분으로 치닫는 김승연 회장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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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일 오전 9시쯤 경찰청. 이택순 경찰청장은 이정근 경찰청 형사과장에게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논현동 사건도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이 2005년 3월 서울 논현동의 한 술집에서 종업원의 머리를 술병으로 내리쳤다'는 일부 언론이 보도한 사안에 대해 수사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과장은 "경찰청장에게 보고한 적 없다. 내가 직접 서울경찰청 형사과장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2. 얼마 지나지 않은 오전 10시40분쯤 서울 남대문경찰서. 경찰청 주상용 수사국장이 '격려와 독려'를 이유로 남대문서를 방문했다. 그러나 주 수사국장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김 회장에 대해 언제쯤 구속영장을 신청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논현동 사건 파악이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논현동 건까지 종합적으로 조사한 뒤 영장을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만 부르고 말 수는 없지 않겠나"라며 김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소환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말도 했다.

#3. 오후 2시10분쯤에는 장희곤 남대문서장이 기자들을 찾았다. 주 수사국장의 발언을 전해들은 장 서장은 "수사 책임자는 수사국장이 아닌 나다. 수사국장이 하라고 해도 (병합수사)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표정은 결연하기까지 했다.

장 서장은 "(관할하는) 강남경찰서에서 논현동 사건을 하든 말든 우리는 보복 폭행 사건으로만 끝까지 간다. 구속영장도 이 건으로만 간다"고 말했다. "수사국장은 수사 지식과 감이 현장에 있는 사람보다 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총경인 장 서장이 경찰 지휘 라인상 상관(치안감)인 주 수사국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김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을 놓고 경찰은 이날 우왕좌왕했다. 김 회장의 자택과 사무실 압수수색은 미리 일정이 알려진 뒤 이뤄져 성과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유일한 목격자로 지목한 김 회장 차남의 친구 이모씨의 소재도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논현동 사건은 강남서에서 별도로 수사하는 것으로 결론내는 데 그쳤다. 장 서장은 "현재 수사 상황은 아직 보강될 부분이 많다"며 "4일 회의를 열어 사전구속영장 신청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 검찰의 송치명령 검토 의견도=김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 서범정 부장검사는 3일 장희곤 서장에게 직접 전화해 '구두(口頭) 지휘' 형식으로 "사생활 보호와 수사 보안 유지 등 법적 절차를 지키며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서 부장검사는 또 수사 상황이나 수사 계획도 유출되지 않도록 보안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경찰 수사가 혼선을 거듭하는 것과 관련, "검찰이 '송치명령'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송치명령은 검찰이 경찰 수사를 중간에 끝내고 수사 기록 등 모든 관계 서류를 검찰에 넘기도록 명령하는 제도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용된다. 서울중앙지검의 고위 관계자는 "현재로선 송치명령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경찰 수사가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송치명령을 논의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애란.이종찬 기자

◆ 논현동 폭행 사건=KBS는 2일 9시 뉴스에서 김 회장이 2005년 3월 논현동의 한 룸살롱에서 종업원을 폭행했었다고 목격자 진술을 통해 보도했다. 경호원을 대동하고 술을 마시던 김 회장이 여자 종업원들의 접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업원의 머리를 술병으로 내려쳤다는 것이다. 이 종업원은 병원 응급실에서 봉합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 치료받아야 했다고 한다. 강남경찰서는 특별수사팀을 구성, 이 종업원의 행방을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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