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부른 무리한 투자확대/한은 91 기업경영 분석<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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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내수진정·수출 부진 풀리지 않는 자금난/야근·잔업기피 풍조 생산성 갈수록 하락
한은의 「91년도 기업경영 분석」결과는 우리기업들의 투자행태와 현실적으로 처한 어려움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지난해 기업들의 금융비용이 경상이익의 3배를 웃돌았던 것은 우리나라의 금리가 워낙 높은데다 서로 남의 돈을 끌어다 투자를 확대하는 바람에 돈값(금리)이 치솟은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부가 가치의 상품생산을 위해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투자도 때와 자금동원 방법이 중요하다. 빗나간 경기예측과 정책흐름을 잘못탄 상태에서 자기자본 보다는 외부차입금에 많이 의존해 투자를 확대하는 자세는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불황을 이기기 위해 새로운 사업에 손대고 공장을 늘렸다가 과를 당한 기업들이 최근 증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투자란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투자는 턱에 차도록 해놓았는데 경기가 진정되면서 물건이 팔리지 않는 문제를 걱정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재고가 쌓이면서 기업들의 자금을 묶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빚을 얻어 공장을 짓고 값비싼 기계를 들여놓았는데 그동안 좋았던 내수경기가 가라앉고 수출은 여전히 부진할 경우 자금난이 심화될 것이고 결국 이자를 갚기 위해 빚을 내는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은은 정부의 정책방향이 총수요 관리를 통해 과열경기를 진정시키고 성장률을 7% 내외로 누그러 뜨리는 것인데 이런 차원에서 보면 최근 2∼3년동안의 기업투자가 좀 과하지 않았느냐는 입장이다. 이같은 지적의 뒷면에 종잡을 수 없는 정부정책에 대한 일침도 깔려있다.
외부에서 빌려쓴 돈이 증가하면서 재무구조도 당연히 나빠지고 있다. 25% 아래로 밀린 제조업체의 자기자본 비율은 대만(90년 54.5%)의 절반 이하이며 일본(90년 30.6%)에 비해서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증시활황과 금융당국의 독려로 그동안 개선기미를 보이던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증시 장기침체와 능력 이상의 투자확대로 또 다시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여건에선 제품을 팔아 돈을 벌어도 실속은 없다. 영업부문의 이익을 이자가 까먹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제조업체들의 영업이익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6%로 전년(6.5%)보다 조금 나아졌다. 수출은 부진했지만 내수시장에서 재미를 봤던 것이다.
그러나 금융비용 등 영업외 부문까지 감안한 경상이익의 대매출액 비율은 1.8%로 전년(2.3%)보다 오히려 악화됐다.
그 결과 경쟁국과의 경상이익률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90년도 일본 제조업체의 경상이익률은 4.3%,대만은 4.5%였다.
한편 야근과 잔업을 기피하는 추세에 따라 종업원 1인당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설비투자를 늘려놓고도 1인당 부가가치 증가율이 낮아지는 것이다. 전과 비교할 때 투자한 돈의 본전을 제대로 건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해 설비투자효율(부가가치를 총설비 투자액으로 나눈 것)이 여전히 75%선을 밑돌고 있는 데서도 나타난다. 설비투자 효율은 88년 80%를 넘어서기도 했었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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