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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슛쟁이 포인트 가드'가 팀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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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울산 모비스를 2006~2007 프로농구 통합 챔피언으로 이끈 유재학(44) 감독은 선수 시절 최고의 포인트 가드였다. 그는 지도자로서 양동근(26)을 최강의 포인트 가드로 키워냈다. 챔피언에 오른 다음날인 2일 모비스 선수단 숙소에서 유 감독을 만났다. 대화의 주제도 '포인트 가드론(論)'이었다.

지난해 놓쳤던 통합 챔피언의 꿈을 이룬 유재학 감독이 2일 울산 숙소에서 자신의 포인트 가드론을 설명하고 있다. 뒤에 있는 플래카드는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수비(Def)와 리바운드(Reb)를 강조하기 위해 걸어놓은 것이다. 울산=송봉근 기자, [중앙포토]


◆ "포인트 가드는 슛이 좋아야"

서울 상명초등학교에 다니던 유재학은 형들이 농구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였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장에 나가 혼자 농구 연습을 했고, 3학년 때 농구부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가드를 맡았지만 연세대를 졸업할 때까지는 정통 포인트 가드라기보다 슈팅 가드에 가까웠다. 실업팀 기아에 입단해서야 방열 당시 감독으로부터 제대로 된 포인트 가드 수련을 쌓았다.

그는 "좋은 포인트 가드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게 슈팅력"이라고 강조했다. '코트의 감독'으로서 다른 선수들을 먹여 살리려면 슈팅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 선수가 자신에게 달라붙고, 동료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양동근은 미들슛은 좋았지만 3점슛이 약했다. 유 감독은 "안 들어가도 좋으니 계속 슛을 던지라"고 독려했다. 슈팅 가드 출신인 양동근이 입단해 처음 포인트 가드를 맡았을 때 무척 힘들어했다고 한다. 너무 괴로워하기에 몇 경기는 슈팅 가드로 뛰게 했다. 그랬더니 "슈팅 가드 하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그만큼 포인트 가드로 변신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증거였다.

'가장 좋은 패스는 어떤 것이냐'고 묻자 유 감독은 "다른 9명 선수의 움직임을 읽고 감각적으로 넣어주는 패스"라고 했다. 센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 감독은 중학교 시절 선수로 뛰면서도 학급 반장을 맡았고, 반에서 10등 안에는 늘 들었다고 한다.

◆ "룰 어기는 선수와는 함께 못 간다"

유 감독의 지도 철학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지난해 미국 전지훈련 중 고참급 두 명이 몰래 숙소를 빠져나가 맥주를 마시고 들어왔다. 유 감독은 오전.오후 훈련을 오갈 때 그 두 선수를 버스에 태우지 않고 뛰어가게 했다. 10㎞가 넘는 거리였다. 며칠 동안 벌을 받은 두 선수는 '항복'을 했고, 그 장면을 지켜본 선수들은 다시는 딴 짓을 할 생각을 못했다.

유 감독은 외국인 선수를 뽑을 때도 '실력'보다 '인성'을 더 중요시했다. 모비스의 크리스 윌리엄스와 크리스 버지스는 깨끗한 매너와 성실한 태도로 팀을 살렸다.

우승 축하연에서 윌리엄스가 유 감독에게 다가와 "선수와 구단 직원들이 즐겁게 맥주를 마시는데 버스 기사 두 분이 술을 못 마시고 있다. 내가 대리운전비를 댈 테니 이 분들도 함께 마시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유 감독이 말했다. "안 돼."

◆ "6년째 기러기… 나는 빵점 아빠"

유 감독은 가족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보내고 6년째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다. 고2인 아들 선호(1m86cm)는 농구선수를 하고 싶었지만 '본토' 아이들과 경쟁하는 게 버거웠다. 유 감독은 "선수도 좋지만 유명 선수를 도와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며 스포츠 닥터가 될 것을 권유했고, 선호도 그렇게 생각을 바꿨다. 중1인 딸 선아(1m70cm)는 학교에서 농구와 배구 선수로 뛰는데 꽤 소질이 있다고 한다. 아빠는 농구선수가 됐으면 좋겠는데 본인은 "배구가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가정의 포인트 가드인 가장으로서 '스스로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이나 주겠느냐'고 묻자 그는 "민감한 사춘기 시절에 애들과 함께 있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빵점"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매일 한 번 이상 전화를 해 안부를 묻는다. 유 감독은 "아이들이 넓은 세상을 보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신 그는 6년 기러기 생활에 건강을 해쳤다. 지금도 매일 당뇨 약을 먹고 있다. 유 감독은 "우승 행사 좀 줄이고 빨리 가족에게 갔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울산=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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