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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경찰 수뇌부의 은폐 의혹 규명돼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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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의 행태가 해괴하기 짝이 없다. 사건 직후 알았지만 초동수사를 하지 않은 채 한달반 동안 쉬쉬했다. 언론보도 후에도 미적거리다가 청와대의 엄정수사 지시를 받고는 난리법석이지만 증거를 못 찾고 있다. 경찰이 김 회장을 감싼다는 인상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그저께는 경찰의 가택 압수수색 사실을 사전에 안 김 회장 측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경찰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러니 김 회장 부자는 자신있게 보복폭행을 부인하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경찰 수뇌부가 처음부터 숨기려 했다는 의혹이 짙다. 서울경찰청 수사관이 사건 발생 다음날부터 2주 넘게 조사해 보고했으나, 서울경찰청 수뇌부는 첩보에 불과하다며 남대문 경찰서로 넘겼다고 한다. 남대문 경찰서장은 이미 경찰청장 출신 한화그룹 고문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상태였다. 그리고 북창동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은 그대로 묻힐 뻔했다. 누가 봐도 수상하지 않은가.

경찰청이 수사팀을 상대로 내사가 늦어진 이유, 외압 여부 등을 감찰한다고 한다. 언론 보도 경위도 조사했다. 늑장 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실무진에 돌려 속죄양을 만들려는 속셈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이 사건은 대기업 회장이 일으켜 화제지만, 본질은 폭행이다. 경찰이 제대로 처리했으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경찰 때문에 사건은 외려 꼬이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감과 반기업인 정서만 확산시키는 꼴이 됐다. 이러고도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국민이 궁금해하는 진실은 두 가지, 김 회장의 폭행과 경찰의 은폐 기도 여부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이 사실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을지 의구스럽다. 이택순 경찰청장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감찰 대상은 경찰 수뇌부다. 경찰 비리로 비화될 조짐도 보인다. 정상명 검찰총장이 어제 경찰의 수사 방식.절차를 비판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철저하게 수사 지휘하라고 지시했다. 이제라도 진실을 한 점 의혹 없이 밝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