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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만행 속죄하고 싶다”/일 노인이 한국대사관에 천만엔 기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일본의 한 노인(75)이 과거 식민지시절 일본이 저지른 죄과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성하겠다며 1천만엔을 주일 한국대사관에 맡겼다.
이 노인은 지난달 17일 주일 한국대사관을 찾아와 『내가 직접한 것은 아니나 일본인의 하나로 조금이라고 속죄하고 싶다』며 1천만엔을 기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대사관측에 따르면 그는 『자식이 들으면 섭섭하게 생각할지 몰라 가족들도 모르게 하는 것이니 익명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 돈으로 정신대로 끌려갔던 사람들의 고초를 조금이라도 돕게 됐으면 좋겠다』며 현재 살아있는 정신대출신들을 위해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대사관 관계자가 밝혔다.
한국대사관측은 이 노인의 신분을 조사해본 결과 특별한 문제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문자그대로 양식있는 일본인의 과거속죄로 보아도 무난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에 대한 처리를 본부에 문의했다. 외무부는 주일대사관측의 문의를 받고 이를 받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국대사관측은 이에 따라 28일 이를 노인에게 통보했고 이 노인은 29일 대사관계좌로 1천만엔을 입금했다.
한국대사관의 조사에 따르면 이 노인은 조지(상지)대학에서 처장까지 지낸 사람으로 대학을 정년퇴직,지금은 도쿄(동경)교외에서 연금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젊은시절 학생운동에도 관여했으며 사회정의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만 밝혔다고 대사관측은 설명했다.
한편 한국대사관은 이 노인에게 『정신대출신에게 본인이 직접 돈을 전달하면 어떻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이 노인은 『그럴 경우 신분이 노출된다』며 이를 거부했다고 대사관은 밝혔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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