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은 달리는 열차도 세우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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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광주·전남지역의 9백여 대학생들이 달리는 열차를 강제로 세워 승차한 다음,집단상경했다. 서부 영화나 갱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무법적 열차탑승이 대학생들에 의해 버젓이 이뤄진 것이 개탄스럽고,또 승차권을 샀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의 승무원들의 태도도 의아스럽다.
학생들 쪽에서는 경찰이 탑승을 봉쇄했으니 열차를 강제로 정지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강변할 것이고,철도청 쪽에서는 차비를 냈으니 목적지에 하차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판단한다 해도 어떤 경우에나 달리는 기차를 강제로 세우고 탑승을 했다면 이에 따른 법적 제재가 따라야 할 것이다. 철로주변의 교통법규가 얼마나 엄중한가. 달리는 기차를 정지시키거나 방해했을 때에는 형법 185조의 교통방해죄로 10년이하의 중벌을 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만큼 기차는 많은 승객을 태우고 있고 갑작스런 정차에 의해 생겨날 위험도도 놓은 것이다.
다수 학생들에 의한 불가항력의 상황이었다면 승무원들은 인근 경찰서에 보호와 구인을 요청하는 자세를 취했어야 옳다고 본다. 대학생의 신분이니 문제삼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불법 정차가 용인되거나 묵인된다면,법의 형평은 법을 알고 법을 앞장서 준수해야할 지성인 집단에 의해 유린되는 꼴이 된다.
학생들이 달리는 열차를 세우면서까지 상경하는 이유는 전대협 6기 출범식에 참석하려는데 있었다. 이미 전대협은 인공기를 게양하면서까지 호응도가 낮아지는 학생운동에 새 불씨를 지피려 했었고 이번 이른바 출범식을 계기로 새로운 형태의 투쟁방식을 전개할 계획이라 한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탈냉전의 시대가 된 바뀌어진 국제환경에도 눈감은채 오로지 편향된 이데올로기에 몰두하면서 투쟁과 가투를 능사로 삼아온게 이들의 집회였다. 바로 이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철로에 불을 지르고 기차를 세워 유유히 상경한 것이다.
시대환경이 바뀌었으면 바뀌어진 시대상황에 따라 대학생들은 현실을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국제환경은 산업화와 기술경쟁의 불꽃튀는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고,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젊은 대학생들의 학문적 경쟁력의 제고에 있다. 그런데도 일부 대학생들은 아직껏 지난날의 폭력시위에만 집착하고 그 목적을 위해선 어떤 불법도 가능하다는 생각에 젖어있다.
달리는 기차를 세우는 것이 대학생들의 특권일 수는 결코 없다. 이를 특권으로 생각하는 일부 학생들의 시대착오적 사고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조사해서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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