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국회 우선 개원부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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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4대 국회가 30일로 임기가 시작됐지만 아직 개원일자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14대라는 숫자에서 보듯 우리 국회도 이제 적잖은 연륜을 쌓았고 성숙된 의정상을 보일 때도 됐건만 14대 국회는 그 출발부터 순탄치 않을 것 같은 걱정이 앞선다.
14대국회는 극히 어렵고도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고 임기가 끝나가는 행정부와 맞대고 있다. 점차 본격화할 선거바람으로 국회운영이 춤을 출 가능성이 크고 새 국회와 구행정부라는 전례없는 상황대치도 미묘하다. 이런 여러가지 사정때문에 문을 열기도 전부터 새 국회에 대한 국민걱정이 크다.
개원협상을 가로막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시기문제만 해도 벌써 선거바람을 크게 타고 있다. 단체장선거를 95년으로 미루자는 여당과 연내로 하자는 야당의 대립에 아직까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일찍이 해마다 선거를 치르고 1년에 세번씩이나 선거를 해서는 곤란하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경제난,인력난 등 어려운 사정과 국정추진의 효율 및 사회기강문제 등을 생각하면 1년 3회의 선거는 무리라는 판단이며 여기에 많은 국민의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고 믿는다.
여야는 이 점에 관해 국가이익과 민심동향을 진지하게 살펴 과거식 정쟁으로만 나가지 말고 한단계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단체장선거를 굳이 대선시기와 중복시키자는 주장은 집권정략에 단체장선거를 이용하고 단체장 공천과정에서 세확보와 자금조성을 하려 한다는 의혹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행해 야당의 두 대통령후보는 모두 경제통임을 자부하고 오늘의 경제난을 우려하는 분들이니 경제를 고려한 지도자다운 단안이 있길 기대한다.
그리고 단체장선거와 같은 쟁점들을 개원시기와 연계시켜 개원을 자꾸 늦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먼저 국회문은 조건없이 열고 의장단·상임위원장을 뽑아 원을 구성하는 것이 옳다. 국회가 못 열린지가 벌써 5개월이 넘었다. 협상은 원구성­국정심의와 별개로 병행해서 할 수도 있는 문제다.
요컨대 여야 3당은 신문광고로 크게 자랑하고 약속한대로 부디 과거와 같은 꾀죄죄하고 옹졸하고 속이 들여다 보이는 이기정치,당략정치를 되풀이 말기를 바란다. 과거의 그런 방식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게 세상이 바뀌고 있다. 이기정치가 이제는 자해정치가 되기 십상이다. 어렵고 미묘한 상황의 14대 국회를 대선정략의 대상으로 삼지 말기를 거듭 권고한다.
이제부터 금배지를 달게 된 의원들도 과거 무슨 일이 지탄받고 저질평가를 받았는지,어떤 정치활동이 환영받았는지를 깊이 헤아려 보고 이 시절이 요구하는 정치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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