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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폭동」 그후 한달/한인촌 복구삽질 “구슬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흑인촌서 장사 안하겠다” 이주추세/관광객줄어 “찬바람”… 역이민도 급증
4·29 로스앤젤레스폭동이 발생한지 한달이 지났다.
2천5백여 업소가 불타거나 약탈당하면서 사망 1명,부상 46명의 인명피해와 4억달러의 재산피해를 본 한인사회는 비탄의 감정을 하루가 다르게 씻어내면서 한국인특유의 오기로 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직까지 한인타운과 사우스 LA에서 불탄 업소들의 잔해는 대부분 그대로 방치돼 있어 당시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지만 가게문이 뜯기고 유리창이 깨진 업소들은 물품을 다시 보충해 영업을 재개하는 모습도 보인다.
피해를 본 한인들이 현재 가장 의존하고 있는 것은 연방중소기업청(SBA)이 제공하는 저리융자와 연방비상대책기구(FEMA)가 신청받고 있는 무상지원금
FEMA기금은 조건이 까다롭고 지원금액도 크지 않아 크게 기대를 걸고 있지 않지만 SBA융자금은 당장 영업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어서 대부분의 피해한인들이 신청절차를 마치고 자금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리커(주류잡화점)나 마킷 등은 대부분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피해복구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불타버린 4백여개의 스왑밋(소규모 잡화점)의 경우 대부분 사업의 영세성 때문에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폭동이 가라앉은 후 LA에 있는 교포언론들은 피해교포를 돕기위한 성금을 접수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3백만달러 이상의 기금을 확보,대책본부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5백∼1천달러씩 긴급지원해주기도 했다. 폭동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한인사회의 노력은 부시 미 대통령 및 미 주요언론들의 찬사를 받고 있지만 후유증은 깊고 넓게 남아있다.
우선 교포들과 본국 관광객을 주요고객으로 의지하고 있는 한인타운의 상권구조 때문에 업소들은 사상 최악의 불경기를 맞고 있다.
폭동이후 본국에서 오는 관광객이 30%이상 줄어들어 호텔·선물센터·관광업계 등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재산손실을 입은 교포들이 지출을 꺼리고 있어 한인타운 경기가 「이대로 주저앉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이 때문에 교포단체들중에는 「우리타운 우리가 살리자」는 구호를 내걸고 한인업소 이용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지만 붐이 일기에는 아직 상처가 너무 깊다.
폭동은 미국이민생활에 대한 깊은 회의를 심어주기도 했다.
수년∼수십년 걸려 이룩해놓은 생활 터전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허탈감때문에 이민생활을 포기하고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폭동으로 직장을 잃거나 의지할 곳 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불법체류신분의 한인들은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흑인촌에서 장사했던 많은 한인들이 그지역에서 발을 빼려는 모습도 보인다. 흑인지역인 사우스 LA지역에서 장사하다가 피해를 본 한인들중에는 다른 지역에서 장사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사람이 많고,여건상 흑인촌에서 장사하더라도 조만간 빠져나오겠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한편 4·29폭동은 LA한인사회에 큰 교훈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교포사회의 주도권을 행사해왔던 이민1세대(한국어 사용층)들은 이번 사태의 수습과 대처과정에서 무력함을 절감해야 했고 그동안 한인사회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던 1·5,2세대(이중언어 구사층)들의 실용적인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때문에 이제 한인사회는 본국지향적인 이민1세대들과 미사회를 꿰뚫고 있는 2세대와의 자연스러운 세대교체 기회가 마련됐다고 보고있다.
교포사회의 단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절감하게 됐다.
사태발생후 LA총영사관이 주도가 되어 범교포피해대책본부가 구성되기는 했지만 각종 피해보상절차에 혼선을 빚고 대외적 대표창구 등이 없어 결집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점은 교포사회의 구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게 공통된 인식이다.
지난 25일 흑인갱단대표와 한인상인조직대표가 만나 한흑커뮤니티간의 협조방안을 논의한데 대해 거센 반발이 터져나온 것도 한인사회가 중심이 없이 뿔뿔이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실례였다.
경제적 성취가 유일한 이민목적이었던 1세대들에겐 폭동이 잔혹한 결과를 남겨주었지만 능력있는 신세대의 부상,한인사회의 단합,타커뮤니티와의 바람직한 관계정립이라는 차원에서 4·29폭동은 한인이민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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