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7)|<제88화>형장의 빛(2)-해인사 입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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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재혼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외가와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17세 되던 해, 나는 『인생은 무엇일까, 영원한 삶은 없는 것일까』하는 심각한 번민에 빠졌다.
육법전서를 외며 고시공부를 한답시고 밤을 새워 공부하던 때였다.
삶과 죽음의 언저리에서 불명확한 대상에 대해 복수심만 가득 키웠던 나는 고학으로 고시공부를 할 결심 끝에 대구로 갔다.
그러나 당장 끼니를 잇기 힘들어 피를 뽑아 그 돈으로 대구역 앞에서 빵을 팔았다.
그때 내 앞으로 스님 한분이 지나갔다. 퍼뜩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은 스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목판을 뒤엎고 해인사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다시는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신선과 같이 살리라』결심했다.
2백리 길을 걸어 해인사에 도착했다. 늦가을 해인사의 황혼이 눈물겨웠다.
해인사에는 청담스님이 주지로 있을 때였다.
향 내음이 은은히 풍겨나는 주지실에서 청담 스님은 넉넉한 표정으로 『세상에 하고많은 일을 두고 왜 누더기를 입으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전쟁 직후라서 먹고살기 힘든 탓인지 승려가 되려는 사람이 꽤 많았다. 청담 스님은 구두시험을 보고있는 중이었다.
『좀더 진실하고 영원한 인생을 살고 싶어서요.』
『영원… 영원이 무엇인지 알고나 함부로 말하는고. 번뇌망상의 병만 완치되면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찰나 속에서도 영원을 발견할 수 있지. 영원의 자아로 입산하는 출가는 내가 허락 못하는 것이지만 먹물 옷 입는 절차는 허락하지.』
청담스님은 나의 입산을 허락해주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행자생활은 육체적으로는 고달프기 짝이 없었으나 속세의 묵은 때를 말끔히 버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행자생활을 했다.
고된 수행의 길이었다. 무릎에 피가 날 정도로 절을 하면서 생활의 참회로 흘러나오는 눈물이 나를 눈뜨게 했다 .
공양주를 할 때 누룽지를 좋아하신 응선 노스님을 가까이 모시게 되었다.
『좋은 책이나 경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나를 깨달아 지혜의 등불로 마음을 밝히는게 더욱 중요해. 항상 의심해 보게. 밥 먹고 잠자고 성내고 기쁘고 하는 그놈이 어떤 놈인가를. 물론 박삼중일테지. 그럼 박삼중이라고 생각하는 또 그 놈은 누구냐.』
응선 스님의 물음에 대답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삼중행자』하고 스님이 나를 불렀다.
『예.』
『이놈아 무얼 고민하느냐. 부르면 대답하는 놈이 바로 박삼중 아니더냐.』
도대체 나란 사람이 무엇을 알고있는가. 내 입, 내 코, 내 손발이라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강조해온 놈이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승복을 입고 있는 한 부처님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장경을 통해 얻은 제일 큰 지식은 바로 부처는 이 땅의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왔다는 것이다.
모든 교리가 행복한 사람보다는 가슴아픈 사람들을 위한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교도소의 불행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재소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도소야말로 「통곡의 강물」이 흐르는 곳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박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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