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연 대화로 「벽」허문다-내무부 연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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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요즈음 내무부에서는 최근 두 차례(13∼14일과19∼20일)에 걸쳐 1박2일씩 실시된 연찬회가 화젯거리다.
어느 부처보다도 상명하복의 관기가 철저한 것이 내무부의 보수적 전통인 만큼 하위직원들이 평소의 생각을 숨김없이 표시하고 상급자가 이를 경청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자체가 이색적인 경험이라는 반응들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변동에 따른 공무원들의 가치관 및 직업관의 변화, 이를 뒤따르지 못하는 현실여건, 그로 인한 갈등과 애환 등 「공무원의 현주소」가 연찬회를 통해 잘 드러나 상호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내무공무원. 그들의 고층과 관심은 무엇인지 연찬회장에서 터져 나온 그들의 목소리를 중계한다.
대화의 장이 열리자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현실에 대한 불만과 요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장래문제였다.
『정치권에서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단체장선거가 이루어지면 우리의 꿈인 시장·군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장관은 무슨 대책을 갖고 있습니까.』
층층시하 부하직원의 목소리치고는 제법 크게 울려나왔다. 따져 묻는 목소리에는 지방조직의 기관장을 꿈꾸며 십수년을 기다려온 미래에 대한 불만이 가득 담겨있었다.
『지방자치발전에 관한 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한 결과 우리 부는 자치단체장 선거는 지방의원과 동시에 하고 국회의원임기중간에 실시해야 한다는 원칙을 마련하고 그 시기는 98년이 적합하다는 입장을 정해 당과 협의중입니다.』
차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중·하위직원들은 지방자치실시에 의해 잠식될 수밖에 없는 내무공무원의 영역을 의식하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지방행정에 바라는 소리」라는 주제로 시민까지 참석한 패널토의에서도 공무원들의 목소리는「상급자에게 바라는 소리」로 모아졌다.
『4년전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말단직으로 들어와 처음 출근해 한 일은 엉뚱하게도 끌 칼을 들고 거리에 나가 어지럽게 나붙은 불법 부착물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아들과 함께 길을 가던 한 어머니가 무엇 하는 것이냐는 아들의 질문에 「너도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부산의 한 동사무소직원은 노력동원과 행사동원이 일선공무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선 동직원이 제일 싫어하는 일중 하나가 구걸하듯 적십자비 거두러 다니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원이 부족한 판에 잡일이 많아 근무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제도적인 개선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대구의 동직원도 공무원의 근무여건이 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앞에 앉은 간부들의 표정이야 어떻든 말단공무원들의 하소연은 계속 이어진다.
『여자직원들의 지방공무원 점유율이 높아져 남자들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단속업무·숙직 등은 남자들의 몫이니 그만큼 부담이 커졌습니다』(광주 동사무소직원). 『6급 직원들의 인사적체를 해소할 수 있도록 시험승진 인원을 늘려주십시오』(본부직원).
그러나 신세타령(?)으로 일관된 것은 아니었다. 더 좋은 직장을 위한 적극적인 건의도 적지 않아 공무원사회의 가치변화 등을 엿보게 했다.
『장·차관을 비롯한 간부들이 제시간에 퇴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래 직원들이 일찍 나갈 수 있습니다. 할 일도 없이 윗사람 때문에 아랫사람을 묶어두는 습관은 버려야 할때가 됐습니다.』
『이제 공무원들도 전문성을 살려야 할때입니다. 각종 교육과 연수기회를 늘려야 합니다. 양질의 행정서비스도 알아야 가능합니다. 공무원사회를 더 이상 낙후된 집단으로 남겨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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