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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빠진 압수수색' 건진 게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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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찰 압수수색팀이 1일 오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택을 수색한 뒤 나오고 있다. 경찰은 증거물을 많이 찾지 못해 원래 준비했던 2개의 압수물 박스 중 한 개만 채웠다. 김형수 기자

1일 오후 2시13분쯤 서울 가회동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자택 앞. 경찰 차량 네 대에 나눠 탄 수사관 15명이 도착했다. 지문 등을 채취하는 과학수사팀도 눈에 띄었다. 김 회장의 보복 폭행 혐의에 대한 물증을 확보하려는 압수수색이었다.

그러나 철저한 보안 속에 신속히 이뤄지는 일반적인 압수수색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압수수색을 한다는 정보가 전날 이미 샜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측은 압수수색에 별로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되레 오후 1시쯤 몰려드는 취재진을 위해 자택 앞에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경찰을 기다렸다. 30여 명의 취재진도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시켜 먹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 '작동도 안 되는 CCTV' 확보=수사팀 관계자는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건질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한 뒤 압수수색에 나섰다.

경찰의 목표는 자택에 설치된 CCTV(폐쇄회로TV) 화면과 차량에 부착된 내비게이션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록이었다. 이 증거물을 확보하면 김 회장이 폭행 사건 당일 승용차를 타고 집을 나선 뒤 어느 곳으로 이동했는지를 파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경찰은 피해자 진술과 모호한 정황 증거 외에는 구체적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2시간30여 분에 걸친 압수수색에서는 기대했던 증거물 확보에 실패했다. 자택 정문과 진입로에 설치된 CCTV의 경우 작동이 안 됐다고 한다.

김 회장 소유의 에쿠스와 체어맨 등을 조사했으나 폭행에 사용했던 차량이 어떤 것인지조차 특정하지 못했다. 차량을 압수해 봐야 결정적 증거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경찰은 당초 압수물을 담을 박스 두 개를 갖고 들어갔으나 한 개만 간신히 채웠을 뿐이다.

강대원 남대문서 수사과장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다. 한화 측에서 미리 준비한 듯하다"고 말했다.

◆ '전시용 압수수색'=성과 없는 압수수색은 이미 예고됐다. 서울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압수수색에 앞서 한 지인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에 신청했고, 이르면 내일(1일) 아침 발부될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압수수색 대상인 한화 측은 여유만만하게 수색에 대비하고 있었다.

한화 홍보실은 "오후 1시에 한다더니 영장 발부가 늦어져 2~3시쯤부터 시작한다더라"며 이미 정확한 시각까지 알고 있었다.

이에 "수사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 압수수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압수수색은 증거 인멸 우려 때문에 비밀리에, 전격적으로, 신속히 하는 게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 내비게이션이 단서 되나=경찰은 김 회장 자택에 세워진 에쿠스와 체어맨을 압수, 차량에 부착된 내비게이션의 GPS 기록을 확인 중이다. 내비게이션은 과거 운행 목적지가 내장된 2~4GB 용량의 플래시메모리에 저장된다.

하지만 ▶청계산 폭행 장소에 갈 때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았거나 ▶범행에 쓰인 차가 아닐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김 회장은 남대문경찰서에 출두할 때 벤츠 S600을 타고 왔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도 단서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회장 개인 명의의 휴대전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위치 추적으로 김 회장의 경호실장이나 수행비서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더라도 김 회장이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고 부인하면 그만이다.

한애란.권호.최선욱 기자<aeyani@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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