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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자의종가음식기행] ⑦ 다산 정약용 종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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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채소밭을 가꾸는 데는 모름지기 땅을 매우 반반하게 고르고 (…) 아욱 한 이랑, 배추 한 이랑, 무 한 이랑씩 심어두고, 가지나 고추 종류도 각기 마땅히 따로따로 구별해 심고 (…) 마늘이나 파, 미나리도 심을 만한 채소다."

대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유배지 전남 강진에서 두 아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친 편지 글이다.'목민심서'등 500여 권의 책을 펴낸 다산. 그의 종가에서는 어떤 음식이 전해오고 있는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나주 정씨 월헌공파 종가를 찾았다. 다산이 태어나고 세상을 떠난 옛집엔 사당도 있고, 부인과 나란히 누운 묘소도 있다. 하지만 후손은 살지 않았다. 팔당댐이 들어서기 이전에 고향을 떠났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7대 종손 정해경(78)옹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종가를 상징하는 고대광실은 아니지만 3대가 한 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전통의 향기가 묻어났다. 찾아간 날은 때마침 휴일. 햇살 바른 거실에서 온 가족이 모여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강진에서 햇차를 보내주어 맛을 평가하는 중이라 했다.

"다산 선조는 유배생활 18년 끝에 정들었던 강진 땅을 떠나면서 다신계(茶信契)를 만들었습니다. 유배생활 중 교류했던 제자 18명과 인연을 계속하기 위해서였지요. 다신계 계원의 후손들이 지금도 강진에서 차를 만들어 해마다 보내줍니다." 차종손 호영(50.사진(左))씨의 설명이다.

차종부 이유정(45.(右))씨는 처음에 요리취재를 한사코 거절했다. 내세울 만한 음식을 전수받지 못해 한 번도 매스컴에 나간 일이 없다고 했다. 그를 보는 순간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종부 자리에 앉는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리더십과 친화력이 두루 느껴졌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님은 음식 솜씨가 참 좋으셨습니다. 나물류와 장아찌류를 즐겨 만드셨는데,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배워두지 못했던 게 지금도 후회됩니다."

난도 높은 음식은 제대로 전수받지 못했지만, 그가 시아버지 밥상에 반드시 올리는 밑반찬이 있다. 깻잎.무.매실장아찌다. 아파트로 옮겨오기 전까지 서울 영등포에서 한옥생활을 했기 때문에 장독대에서 숙성된 장아찌는 종가의 특미였다.

"5월 말께 육질이 탱탱한 청매실이 나옵니다. 매실을 씻은 다음 4등분으로 잘라 씨를 발라내고, 흑설탕과 황설탕을 반반씩 매실과 같은 양으로 준비합니다. 항아리에 매실 한 켜, 설탕 한 켜 담아 그늘에 둡니다. 20일쯤 지나면 매실청이 생기는데, 병에 보관했다 물에 타서 매실차를 만들거나 쪼글쪼글해진 매실을 고추장에 버무려 장아찌를 만듭니다."

그의 예사롭지 않은 손맛은 일곱 가지 산채요리에서 살아났다. 도라지 초무침, 달래무침, 취나물, 파강회, 두릅회, 우엉과 연뿌리 조림이다. 취나물 무침은 간장과 깨소금만을 사용해 취의 독특한 향을 담아냈고, 도라지무침은 고춧가루 양념으로 깔끔한 맛을 냈다. 가족이 감기가 들면 파강회를 올린다고 했다.

종부는 "나물반찬이 무슨 요리가 되느냐"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야채요리는 정성과 사랑 없이는 만들 수 없다. 종가의 소박한 밥상에 다산의 실학정신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었다.

이연자 한배달우리차문화원장(teacook@hanmail.net)

◆도라지 오이생무침

재료-도라지 250g, 하얀 오이 1개, 미나리 100g, 고춧가루 2큰술, 설탕과 식초 2큰술, 다진 마늘 1/2큰술, 다진 파 1/2큰술, 굵은 소금 1큰술.

①통도라지는 껍질을 벗겨 잘게 찢은 뒤 굵은 소금 1큰술을 넣고 바락바락 문지른다. 이렇게 해 쓴맛을 빼고 부드럽게 한 뒤 물에 헹궈 꼭 짠다. 오이는 세로로 반 갈라 어슷어슷 썰어 굵은 소금 1/2큰술을 넣고 10분간 절인 뒤 물기를 꼭 짠다. 깨끗이 씻은 미나리 줄기를 3㎝로 썬다. ②위의 양념장은 고루 섞어 둔다. ③넓은 그릇에 도라지와 오이를 담고 양념장을 넣어 고루 무친다. 빛깔이 곱게 들면 미나리를 섞어 그릇에 담아낸다.

◆쪽파강회

재료-쪽파 400g, 고추장 4큰술, 물 1큰술, 식초 2큰술, 설탕 1과 1/2큰술, 마늘즙 1작은술, 생강즙 1/2큰술.

①가는 실파를 골라 깨끗이 씻는다.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실파를 파릇하게 데쳐 찬물에 헹궈 건진다. ②데친 파는 서너 가닥을 잡고 손가락 두 개에 말아 가운데를 묶는다. ③접시에 미나리강회를 가지런히 돌려 담고, 초고추장은 따로 작은 그릇에 담아낸다.

◆취나물 무침

재료-생취 300g, 소금 조금, 양념(조선간장 1/2 큰술, 소금 1작은술, 깨소금 2작은술).

①취는 잎이 깨끗한 것으로 골라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쳐 헹군 뒤 물기를 꼭 짠다. ②그릇에 양념을 한데 담아 고루 섞은 후 데친 취를 넣어 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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