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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입맛 지키려 ‘미국산 쇠고기’ 고집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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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21면

일본에서 ‘규동’(쇠고기덮밥) 하나로 한 해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108년 역사의 요시노야(吉野屋). 지난달 이 회사의 각 체인점에선 환호성이 일었다.

일본 ‘규동’ 명가 요시노야의 부활 스토리

원료인 미국산 쇠고기 부족 때문에 ‘오전 10시~오후 3시’로 제한했던 판매 시간을 밤 12시까지로 전면 확대하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든 것이다. 3년여 만의 ‘저녁 규동’에 퇴근길의 일본 샐러리맨들은 열광했다. 한 달 사이에 각 점포 매출은 평균 45%나 뛰었다. 이 추세로 가면 올해 영업이익이 100% 신장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도쿄 신주쿠(新宿)의 본사에서 만난 아베 슈지(安倍修仁ㆍ57) 사장의 눈가에는 눈물이 비쳤다. 3년여 동안 겪었던 역경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4년 전인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 아베 사장의 집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큰일 났습니다. 광우병에 감염된 소가 미국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요시노야는 전국 1022개의 점포에서 하루에 규동을 80만 그릇이나 파는 일본 최대의 규동 브랜드. 모든 쇠고기를 미국산에 의존하고 있었다. 아베가 우려했던 대로 며칠 후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

결국 아베 사장은 전 점포에서 규동 판매를 중단했다. 업계 2, 3위 경쟁사인 마쓰야(松屋)와 스키야는 중국산과 호주산 쇠고기로 재빠르게 전환했다. 워낙 규동을 즐기는 일본인의 식성 때문인지 이들 두 업체의 매출은 올라갔다. 사내에서도 “언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될지 모르니 우리도 빨리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분출했다.

하지만 아베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24년 전의 소중한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스티비 원더에 열광하는 ‘젊은 뮤지션’이었다. 규슈 후쿠오카(福岡)현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무작정 도쿄로 올라와 낮에는 요시노야 신바시(新橋)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연주 생활을 했다. 성실하고 밝은 그의 태도를 높이 산 당시 점장이 그를 정사원으로 추천했다.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요시노야는 급격하게 점포를 확장한 나머지 쇠고기 공급이 달리자 건조된 고기를 쓰고 소스를 기존의 액체 대신 분말가루로 바꿨다. 이것이 치명타가 됐다. 맛이 떨어지면서 고객은 떠나기 시작했고, 그가 입사 9년차로 30살이 되던 80년 7월 회사는 도산하고 말았다.

동료 직원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나갔지만 아베는 회사를 살린다는 일념으로 법정관리 아래서 버텼다. 도산 후 6년 만인 86년 아베는 42살의 젊은 나이로 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로 맛을 낸 규동으로 회사를 정상화했다.

이처럼 ‘맛’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몸소 체험했던 아베 사장으로선 아무리 ‘벼랑 끝’이라고 하지만 신념을 버릴 순 없었다. “순간적으로 고객의 입맛을 속일 순 있지만 그러면 결국 버림받게 된다. 긴 안목으로 보자”며 직원들을 설득했다.

아베 사장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기다리며 ‘규동’ 대신 ‘돼지고기 덮밥’ ‘카레 덮밥’ 등 다른 메뉴를 개발해 내놨다. 하지만 고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업계 수위에서 미끄러지고 2004년엔 11억 엔의 적자를 냈다. 24년 만이었다. 회사가 술렁였다. 특히 젊은 직원들이 불안해했다.

그때마다 아베 사장은 “선배들이 열심히 벌어놓은 덕분에 자네들 월급은 앞으로 2년 정도 가게 문을 완전히 닫아도 문제가 없다”고 안심시켰다. “3년, 5년 후에는 우리가 한 지금의 결정에 감사할 것”이란 믿음도 줬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적자 때문에 잠이 안 오더군요. 사회에 대한 불만도 생겼고요.(웃음) 솔직히 과학적인 규명 없이 정서적 불안만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언제까지 수입금지시키는 것이냐 하는 분노감에 ‘말도 안 되는 일본이여 그냥 될 대로 되라’는 뒤틀린 느낌까지 들었어요. ”

2년 7개월의 터널을 빠져나와 지난해 9월 미국산 쇠고기가 부분적으로 수입 재개되면서 요시노야는 부활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일단 오전 11시~오후 3시의 한정 판매였지만 요시노야의 ‘올드 팬’들은 속속 돌아왔다. “역시 이 맛이야.” 반짝했던 경쟁사들은 적자로 돌아섰다. “현실보다 고집을 우선한다”고 비판하던 일본 언론들도 “지옥에서 귀환한 ‘오뚝이 사장’”이라며 극찬하고 나섰다.

미국의 컨설팅업체 매킨지 일본지사는 “단기 실적은 잃었을지 모르나 더 소중한 ‘브랜드’를 지켜낸 결과”라며 “고객들과의 신뢰관계는 더욱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상식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아베 사장의 경영철학은 특이하게 느껴진다. “웬만큼 기틀이 잡혀 있는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너무 바꾸려 해선 안 돼요. ‘바통 터치’에 충실해야 합니다. 자아 실현이나 개인적 욕심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여러 시행착오의 집대성인 회사의 노하우를 보다 더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해요. 좋은 점은 바꾸지 말고 방법론적인 것만 변화시키면 됩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로 1년여 만에 철수한 한국시장을 다시 노크할 생각이다.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큰 시장인 만큼 재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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