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결심한 정운찬 지난 주말 중앙일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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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중엔 정치권에서 전략가로 통하는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을 만나 거취 문제를 상의했다고 한다.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이 2시간가량 만난 것은 정 전 총장의 요청 때문이었다.

이때 윤 전 의원은 "시간을 끌면서 정치를 할 듯 말 듯 하는 것이 국민의 눈엔 정략적으로 계산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건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라며 "신념을 향해 몸을 던지든지, 아니면 빨리 그만두는 게 낫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정 전 총장은 지난달 27일 기자와 만나서도 "정치 참여를 할 경우 선언은 천천히 할 생각이지만 정치를 안 할 거면 가급적 빨리 의사를 밝히려 한다"고 말해 불출마 가능성을 내비쳤다. 다음은 이날 나눈 일문일답 요지.

-불출마 생각도 갖고 있나.

"대통령을 하려면 소명 의식이 있든가, 아니면 권력욕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둘 다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

-지인들과 상의는 하고 있나.

"얼마 전에 조순 선생님을 찾아가 '저는 도저히 준비가 안 돼 있어서 안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되레 '내가 늘 사회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게 학자의 소임이라고 가르쳤는데 왜 망설이느냐'고 야단을 치시더라."

-4.25 대전 서을 보선에 출마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은 없나.

"1월께 보선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정치권에서 받았다. 만약 출마했더라도 대선에 나가려면 몇 달 만에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또 심대평 전 충남지사가 출마할 것이란 것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나가는 건 말이 안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심대평 후보를 도울 수도 있었는데.

"국립대학 교수는 공무원이다. 정치 활동을 못한다. 생각해 보니 후원금 봉투를 들고 가서 전달하고 나오는 길에 기자들한테 사진 찍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더라. 하지만 그렇게 하는 건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그만뒀다."

-진짜 고민이 뭔가.

"난 준비가 안 돼 있다. 올 2월까지도 대통령 출마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할지 안 할지 고민이라고 말하니까 (출마를 권유한 사람들이)제발 안 한다는 말만 하지 말라고 해 몇 달을 그런 상태로 온 것이다."

-범여권 일각에선 정 전 총장을 대안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만약에 열린우리당 쪽으로 가게 된다면 지분(持分)정치를 하게 될 것 같다.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민생정치모임) 등이 지분을 주장하면서 관여하려 할 텐데 그렇게 해선 대통령 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을 하는 게 낫다. 정치에 나가 봐도 갈 집이 없다."

지분정치란 계파를 중심으로 당직이나 정부직을 나눠 갖는 것을 말한다.

화제가 정치권으로 옮아가면서 그는 정치인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특히 최근 자신의 사생활을 둘러싼 악성 루머가 여의도 정가에서 흘러나오는 데 불쾌해했다.

그는 "여의도에서 나와 관련된 이상한 소문이 많다는데 아느냐" "좀 알려 달라"고 묻기도 했다. 그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내가 논문을 쓴 게 워낙 없어서 표절 시비에 걸릴 게 없다는 루머도 있다고 하는데, 경제학 교수로서 절대 논문 수가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장남으로 양자 입적했다고 하는데 난 차남이다. 형님은 몇 년 전 작고했다. 팩트만 확인하면 금방 사실이 아닌 게 드러나는데…그런 터무니없는 소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고 분개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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