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형소법 개정, 사법 민주화의 발판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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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배심제를 도입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안'과 재정신청 확대를 포함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어제 국회를 통과했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뒤 97년 영장실질심사가 도입된 것 말고는 별반 달라진 게 없던 재판 절차가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국회 계류 중인 로스쿨법까지 통과된다면 법조인 선발.양성에서부터 수사.재판에 이르기까지 사법제도의 일대 변혁이 예상된다.

우선 그동안 지나치게 권위적이라고 비판받아 왔던 사법 절차 전반에 걸쳐 인권 보호 수단이 확대되고 재판에 국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길이 열린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피의자 신문 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해 수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명문화한 것과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릴 경우 재심을 신청하는 재정신청을 모든 범죄로 확대한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일컬어지던 검찰권을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치다. 변호사의 이의제기 남용에 따른 수사 차질이 염려되기도 하지만 검찰의 고압적 수사 관행을 고려한다면 수사 방식 개선의 책임은 검찰의 몫이다. 보석금 없이도 출석 서약서와 제3자 보증서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보석을 가능케 한 것도 있는 자들만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보석제도를 개선한 것이다.

하지만 다소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배심제의 경우 지연.학연이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우리 현실에서 법원 관할 구역 거주민으로 구성되는 배심원단이 엄정한 법리적 판단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배심원 매수나 판결 이후 불만에 따른 보복 행위 방지도 보완해야 할 과제다. 피고소인의 80%가 기소되지 않는 현실에서 재정신청 확대가 자칫 고소 홍수 사태로 이어질까 염려된다. 하지만 구더기 무섭다고 장을 담그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문제를 법원과 검찰의 힘겨루기가 아닌 사법 서비스의 수혜자인 국민의 관점에서, 국민을 위한 방향으로 풀어가는 것이 우려를 불식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