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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유전쟁] 17. 젖소 찾아 삼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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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산비탈을 개간해 초지를 조성한 다음 정부로부터 젖소 70마리 수입 허가를 따냈다. 처음에는 순진하게도 국내 수입업자에게 홀스타인종 젖소 수입을 의뢰했다. 젖소를 비롯해 가축 수입으로 이름난 회사였기 때문에 믿고 맡긴 것이었다. 그랬는데 한국에 도착한 젖소들의 모습이라니. 숫자도 모자랐을 뿐만 아니라 당초 약속한 날짜보다 몇 달이나 늦게 도착했다. 거기까지만 해도 참을 수 있었으나 소들의 몰골을 보고는 "이게 아니구나"하고 후회했다. 대부분 비쩍 마르고 임신 능력을 잃은 늙은 젖소였다. 나는 이런 젖소들을 받지 않고 직접 미국으로 날아갔다.

나는 위스콘신주와 오하이오주에 있는 여러 목장을 돌아봤다. 미국 목장들은 존 웨인이 등장하는 서부영화 속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목장주들도 카우보이 출신이라서 그런지 거칠었다. 이들은 멀리 한국에서 젖소 70마리를 사러 온 나를 처음부터 눈을 내리깔고 보면서 으스댔다.

목장주들은 팔려고 하는 소를 한 마리씩 목책 안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목책 위에 앉아 소의 모습과 행동거지를 유심히 살피다가 마음에 들면 'OK', 아니면 'NO' 사인을 내기로 돼 있었다. 합격한 소는 따로 마련한 울타리 안으로 보내고, 불합격한 소는 초원으로 되돌려 보낸다. 소들이 들어왔다. 나는 대부분 NO 사인을 냈다. 쓸 만한 놈이 거의 없었다. 목장주들이 한국에서 온 구매자를 깔보고 병들거나 늙은 소들만 들여보내고 있었다. 나는 계속 NO 신호를 보내다가 마침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목장주들이 화를 내며 달려왔다. "소를 사겠다는 거냐, 안 사겠다는 거냐. 그런 식으로 나오면 우린 소를 팔지 않겠다. 한국에 돌아가서 너희들 소나 키워라." 분위기가 험악했다. 나는 목책에서 내려와 윗도리를 벗었다. "야. 이놈들아. 먼 곳에서 온 손님을 환대는 못할망정 병든 소들을 내놓고 사기를 치느냐. 다 덤벼라. 죽여놓고 말테다." 서부의 거친 사내들에게 서부영화식으로 덤볐다. 정확하게 말하면 서부영화식이 아니라 한국식 오기를 부린 것이었다. 그때서야 카우보이 출신들의 기가 꺾였다. 목장주들이 사과했다. "미안하다. 카우보이들이 뭘 잘못 알고 나쁜 소들을 들여보낸 모양이니 이해해 달라."

그 다음부터 목장주들의 태도가 고분고분해졌다. 그들은 좋은 소만 골라서 선보였다. 나는 욕심을 내 그 중에서도 우수한 놈들만 골랐다. "한국은 지금 낙농업 초기 단계다. 시작부터 나쁜 소들을 들여놓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설득도 했다. 목장주들은 내 말을 이해하고 협조해 줬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우수한 젖소 70마리가 태평양을 건너 왔다. 겉으로는 70마리였으나 사실은 그 두배였다. 모두 임신한 암소였기 때문이었다. 그 젖소들이 성진목장에 와서 거의 매일 한 두 마리씩, 어떤 날은 몇 마리씩 송아지를 낳았다. 나는 직접 송아지 낳는 일을 도왔다. 처음에는 경운기에 밧줄을 걸어 송아지를 잡아당겼다. 어미소와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무리하게 잡아당긴 나머지 다치거나 죽은 송아지가 많았다. 마지막 단계에서 머뭇거리다가 질식해 죽은 송아지도 나왔다. 열마리의 송아지 중 여덟마리가 죽어서 나온 날도 있었다.

나는 소가 송아지를 낳는 일이 목장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일임을 깨닫고 긴장했다. 이런 일을 해본 목장 직원도 없었다.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다. 나는 밤 새워 책을 읽었다. 우리보다 낙농업이 한 발 앞선 일본의 책들이 도움이 됐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의 길도 있는 법이다. 몇달 뒤부터는 출산 도중 죽어서 나오는 송아지는 거의 없어졌다.

최명재 파스퇴르유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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