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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그러나 무서운 신세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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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15면

노벨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는 다채로운 이야기꾼들이 출몰한다. 작품 첫머리에는 우물 바닥에 던져진 죽은 몸이 말을 걸고, 연이어 남녀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그 말을 잇는다. 그뿐 아니라 그림 속의 개는 물론이요, 나무와 금화가 말하며 심지어 형체도 없는 ‘빨강’까지 이름을 밝히며 화자로 등장한다. 문학이나 예술의 세계에서는 이 같은 모습이 결코 생소하지 않다.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는 물론이요, 냄비·빗자루·자명종 등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물활론적(物活論的) 정경이 펼쳐지니까.

기고 / 두 얼굴 가진 웹의 미래 #원하면 양질의 지식을 누구나 얻는 ‘웹토피아’ 도래… 인간·비인간 경계 허물어질 수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생명체와 무생물은 유한성을 지닌 생명의 존재 여부에 따라 구분되어 왔으며, 또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사유능력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라는 점에서 다른 동식물과 다르다. 그러나 웹이 진화를 거듭해 의미작용에 관여할 수 있는 시맨틱웹(semantic web·컴퓨터가 정보자원의 뜻을 이해하고, 논리적 추론까지 할 수 있는 차세대 지능형 웹)이 확산되는 단계에 이르면,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상상으로 그려왔던 인간-비인간 상호작용이 현실화하는 ‘만유소통(萬有疏通)의 시대’가 도래할 전망이다.

‘세계(World) 만방을(Wide) 거미줄처럼(Web) 연결하자’는 구호를 앞세운 웹 시대가 개화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그러던 웹이 다음 단계로 진입하면서 우리의 생활세계는 크게 변모하고 있다. 최근 웹 2.0 논의에서 대부분 논자들은 기술 변화보다 경제사회적 변화의 측면을 강조한다. 웹 2.0은 종전의 1세대 웹을 뛰어넘는 새로운 기술체계를 갖췄다기보다 롱테일 이코노미, 참여형 백과사전, UCC 동영상 등과 같은 새로운 경제산업적 현상이나 생활양식을 부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해 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 플랫폼의 실존을 부정하는 이들은 웹 2.0의 등록상표처럼 알려진 ‘개방·공유·참여’ 등이 정보의 원활한 소통을 지향하는 초창기 웹의 기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식정보가 다수의 사용자가 참여하는 개방적 상황에서 널리 공유될 때 내재적 가치가 배가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창발적 특성에 따라 웹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

집단지성의 창출은 앨빈 토플러가 오래전에 예고한 생산소비자(prosumer)층이 지식세계로 대거 진출할 것임을 시사한다. 지속적 업로드와 다운로드를 통한 지식의 생산-교류-재생산 활동은 과도하게 분업화한 지식정보를 자유롭게 조직해 지식격차를 완화하고 대중과 지식인의 간극을 좁힘으로써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양질의 지식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웹토피아’가 구현될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세상 만물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법이다. 웹 진화의 부정적 단면은 그간 불법성·음란성 등의 쟁점을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기존 관점으로 쉽사리 포착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과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시맨틱웹과 관련, 논의 자체가 일천한 현 단계에서는 주로 개개인의 욕구를 감안한 맞춤형 지식정보의 제공이라는 긍정적 단면이 늘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천재도 넘볼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능란히 구사할 수 있는 지능형 웹의 출현은 우리 삶을 크게 뒤흔들 수 있다.

웹 진화와 관련된 향후의 가장 심각한 쟁점은 인간 존재에 대한 위협이 아닐까 한다. 웹사이트·블로그·UCC 등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기존의 모든 정보는 인간의 손으로 입력되고 변형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생체기반적 사이보그가 아닌 기계기반적 ‘웹보그’가 우리 정신세계에 잠입하게 되면, 인류가 고지능 복제물들에 의해 농락당하는 파국적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지능형 로봇이라고 불리는 종전의 스마트 머신과 달리 웹보그는 형상이나 경계가 불분명하다. 마치 영화 ‘X-man Ⅱ’에서 핼리 베리가 연기한 ‘스톰 인간’과 같이, 예고도 기척도 없이 다가와 때때로 우리를 괴롭히고 때로는 우리를 구원해주는 전지전능한 복제인간의 출현으로 앞으로 인류는 엄청난 실존적 도전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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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조-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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