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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맛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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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27면

“집 근처에 작지만 가고 싶은 식당이 있었으면 좋겠어.”

김태경·정한진의 음식 수다

주변에 그런 식당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언제라도 찾아가면 자기 집처럼 편안한 곳이 그립다. 요리사로서도 꿈꾸는 식당이다.

“식당이 규모가 있고 인테리어가 화려하면 손님도 어쩔 수 없이 폼 잡아야 하지. 물론 격식을 갖추어야 할 자리라면 할 수 없지만.”

“그래요. 그런 자리는 음식을 즐겁게 먹는다는 게 주가 아닐 경우가 많지 않겠어요. 그런데 정말 분위기 좋은 집이라고 추천하는데, 과연 식당의 ‘분위기’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요.” 물론 우아하고 세련된 인테리어, 좋은 전망, 차분한 느낌이 좋은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전주 남부시장 안에 있는 콩나물국밥집 ‘현대옥’에 갔을 때다. 많은 사람이 추천하기에 예전부터 가보려고 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던 곳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전형적인 장터국밥집인 이곳은 전화번호도 없다. 8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일자형 테이블이 있고 그 너머가 주방이다. 주방에서 하는 일을 모두 다 볼 수 있는 말 그대로 개방형 공간이다. 주인 할머니가 국밥을 토렴하고 양념을 넣는 것이 눈에 낱낱이 들어온다. 국밥 한 그릇을 낼 때마다 큰 나무도마에서 마늘을 칼자루로 쿵쿵 짓찧고 파와 고추를 쓱쓱 썰어넣는데, 그 자체가 일종의 퍼포먼스다. 수십 년을 그렇게 하다 보니 손목 인대가 늘어나고 관절에 이상이 있어 얼마 전 삼 개월 동안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언제 문을 열지 알 수 없었던 단골들은 수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는데, 전화번호가 없으니 직접 걸음을 할 수밖에. 바쁜 가운데서도 단골손님과 나누는 무뚝뚝한 말투도 한몫한다. 콩나물국밥 맛 못지않게 강렬한 것이 그곳의 분위기였다.

“정말 독특했어요. 흔히들 식당을 평가하는 항목으로 분위기를 꼽는데, 분위기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 국밥집은 국밥집 나름의 분위기라는 게 있지. 큰 규모의 현대식 식당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으면 그 맛이 나겠어? 아, 그런데 재미있네, 식당 상호가 ‘현대옥’이라.”

최고의 재료와 기술만 있으면 그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아, 이 음식 맛있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분위기일 수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응암 오거리에 ‘원산집’이라는 추어탕과 동그랑땡을 팔던 작은 식당이 있었지. 그 집에는 상호대로 원산 출신의 주인 할머니와 열여덟 살부터 40년 동안 이 집에서 일을 한 아주머니가 계셨지. 보살 같은 주인 할머니와 투덜거리지만 같이 늙어가는 아주머니, 이 두 분이 운영하는 가게에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맛’이 있었지.”

“이제는 그런 집들이 흔치 않아요. 외관상으로도 깨끗해 보여야 손님들이 찾지요. 그런 깔끔함이 추억이 남을 여지를 없게 만들죠. 비록 명품 식기를 쓰지 못하고 비싼 재료를 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추억에 남을 작은 식당을 만들고 싶은데. 게다가 맛을 알고 멋을 아는 손님이 있다면 더 좋고요. 그래야 신이 나서 이 음식 저 음식 만들어가며 같이 즐길 수 있지 않겠어요.”

“너, 내 집 근처로 와라.”

“선배밖에 손님 없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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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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