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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용 대림 명예회장 ‘돌출 언행’ 까닭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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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18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뽑는 과정에서 이준용(69) 대림그룹 명예회장은 왜 잇따라 돌출 행동을 했을까. 기자는 그의 속내가 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달 초 비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며칠 뒤 이 명예회장이 기자의 휴대폰으로 불쑥 전화를 해 “나 이준용이오”라며 몇 마디를 털어놨다. 최근 자신의 ‘소신발언’에 대한 해명이었다.

누가 뭐래도 ‘할 말은 한다’ ‘거짓말 안 한다’ 지론 실천 때문?

“난 조석래씨(전경련 회장ㆍ효성)를 견제한 적이 없다. 평소 내 기준대로 나이 얘기(70세 불가론)를 한 것뿐인데. 다른 사람까지 내 기준에 반드시 맞춰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것도 역시 이상하지 않나? 평소 하지 않던 말을 전경련에 가서 불쑥 지껄인 것도 아니고. 그래서 주변에서도 나를 그런 사람이려니 하는 것 아닌가.”

이 명예회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용구 대림산업 회장(전문경영인)에게 그가 소신발언을 잇따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우리 회장님은 다른 회장들과 다르지 않으냐”며 “나는 그가 솔직해서 좋다”고 말했다. 국회 5공 청문회 때 다른 기업 회장들은 정치자금 제공 사실을 ‘기억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이 명예회장은 35억원의 정치자금을 줬다고 떳떳이 밝히면서 “xx했다고 내가 돈을 그냥 주냐. 저쪽에서 달라는데 어떻게 안 주느냐”고 했다. 1995년말 비자금 사건으로 30대 그룹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갔을 때 검찰에서 “하루 이틀 내에 오시라”고 했다. 그러자 “지금 시간 있으니 가겠다”며 바로 출두했다. 재계에서는 ‘전격소환’이라며 소동이 벌어졌다. “하루이틀 늦춘다고 달라질 게 뭐 있느냐”며 그는 주변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거짓말은 않는다’와 ‘할 말은 한다’는 소신이 있다. 회사 내에서는 “회장님이 선비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전경련 총회날인 지난 20일 이 명예회장은 강신호 전 회장과 조건호 상근 부회장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조 부회장이 강신호 회장의 생신이 3월 27일이고, 주총이 3월 29일이므로 그때까지 전경련 회장직을 유지해 주자”고 했다며 “그러나 인터넷 검색 결과 강 회장 생신이 5월 13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조 부회장과 강 회장이 거짓말을 했음을 폭로하기 위해 인터넷까지 뒤졌다는 얘기다. 그는 비서실에 지시해 조인스 인물정보 자료를 챙겼다고 한다. 결혼 스토리도 있다. 재계에 ‘정략 결혼’이 유행하던 때 그는 평범한 집안의 한경진 여사와 연애결혼했다. 양가의 반대에 부닥쳤지만 소신으로 극복했다.

그는 소신 발언뿐 아니라 ‘소신 경영’도 한다. 1993년 회장에 오른 그는 지난해 말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70세가 넘으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그는 올해 한국 나이로 70세다. 실제로 지난 9일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서 빠졌다. 그룹 경영을 전문경영인인 이용구 회장에게 넘겼다. 3남2녀를 뒀지만 경영참여는 장남인 이해욱(39) 대림산업 부사장뿐이다. 이 명예회장은 평소 “대주주라고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면 안 된다.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배구조도 대림코퍼레이션을 축으로 수직계열화해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이유를 물었다.
“건설업을 하는 사람이 (전문경영인 체제니 하는) 그런 고급스러운 말은 모른다. 모(母)회사가 건설 아니냐. ‘내 회사’ 음…그렇게 얘기하면 이상하지만, ‘내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도 나이가 들어서… 내가 주물러 터뜨리는 것보다 후배들 시키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물러났다.”

이용구 회장은 “회장님 밑에서 사장을 6~7년 하면서 큰 내용만 보고했고 그도 간섭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분업이 잘돼 있다”고 했다.
소신 경영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어떨까.

대림은 일찌감치 전문경영체제로 바꿔 그가 일선에서 후퇴했음에도 시장의 동요가 없었다. 삼성증권 허문욱 애널리스트는 “전문경영인체제인데도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움직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도급사업 중심의 보수경영을 탈피해 해외사업 진출에 적극적”이라고 했다.

  실제로 해외 물량을 잇따라 수주해 ‘비상(飛上)’ 중이다. 올 2월 쿠웨이트 파이프라인 공사를 시작으로 최근 7억 달러짜리 이란 정유공장 증설 공사를 따냈다. 올 들어 21억3000만 달러의 수주 실적이다. 지난해 전체 해외 수주 실적보다 6배나 많다. 주가도 뛰어 지난 23일 현재 8만4000원대다. 황제주로 군림하던 GS건설을 제쳤다. 미래에셋증권 변성진 애널리스트는 “이란 공사 수주로 앞으로 이어질 대규모 수주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며 “대림은 제2의 전성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소신 행보는 마찰음도 있다. 2001년에 경기고 14년 후배인 한화 김승연 회장과 감정 싸움을 벌였다. 99년 빅딜(대기업 간 사업교환)로 공동 경영하던 석유화학공장인 여천 NCC의 파업이 발단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경찰을 철수시킨 뒤 노조와 협상을 해 파업을 유보시켰다. ‘원칙 대응’을 강조한 한화가 ‘이면합의설’ 등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격분한 이 명예회장은 기자회견을 해 “한화가 터무니없는 의혹을 퍼뜨리고 있다”고 역공을 했다. “김승연 회장님, 한번 만나 달라”는 신문광고까지 했다. 양측의 갈등은 가까스로 봉합됐지만 두 회장의 개인적 앙금은 가시지 않았다. 이 때문에 ‘좌충우돌하는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강신호 회장의 3연임을 비판한 그는 사실 2005년에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둘러봐도 강 회장님보다 더 훌륭하신 분이 없다”며 추대발언을 했다.

  이 명예회장의 행보는 단지 개인 성향이 아니라 집안 내력이라는 말도 있다.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故) 이재준 회장도 ‘소신과 고집’으로 재계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서슬 퍼런 박정희 대통령 당시 청와대 인사의 청탁을 거절했던 일이 화제가 됐다. 이재형 전 국회의장(작고)이 이 명예회장의 백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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