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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핵 개발 아버지 덩자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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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26면

신장 뤼부포 핵실험장에서의 덩자셴(왼쪽). 사진은 덩이 사망한 뒤 공개된 것이다. 

1956년 4월 25일 마오쩌둥(毛澤東)은 “원자탄을 가져야 한다. 남들에게서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 물건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선포했다. 당시 중국의 대표적 물리학자 중 한 사람으로 첸싼창(錢三强) 원자력연구소 소장이 있었다. 그는 루쉰(魯迅)에게 처음 소설 쓸 것을 권한 첸쉬안퉁(錢玄同)의 아들이다. 그해 8월 첸싼창은 미국 유학 후 귀국해 물리연구소에서 일하던 덩자셴(鄧稼先, 1924~88)을 방문했다. 첸쉬안퉁이 루쉰을 찾아가 글 쓸 것을 권한 지 40년 후였다. “국가에서 대포를 한 방 갈기려 한다. 작업에 참여하라.” 덩자셴은 첸싼창의 은어를 알아들었다. 그날 밤 덩은 부인(許鹿希)에게 말했다. “집안 일을 책임져주기 바란다. 나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생명을 바치겠다.” 당시 덩의 나이 34세. 이후 제2기계부에 설립된 핵무기연구소 이론부 주임이 된 그는 전국에서 전공과 상관없이, 우수한 대학졸업생 23명을 선발했다. 그리고 베이징(北京) 교외 옥수수밭 자락에 연구소를 세웠다. 중ㆍ소 관계 악화로 소련 과학자들이 철수한 뒤엔 ‘596’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596은 중국이 독자적 핵개발에 나선 1959년 6월을 뜻한다. 당시 중국공산당 서기처 총서기 덩샤오핑(鄧小平)이 연구원들을 격려했다. “비장한 마음으로 일해라. 잘못됐을 경우 모든 책임은 우리 서기처가 진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② 중국 핵 개발 아버지 덩자셴

1964년 10월 16일 신장(新疆) 뤄부포(羅布泊) 사막에 세워진 높이 120m의 철탑 위에 중국 최초의 원자탄이 걸렸다. 오후 3시 섬광과 함께 버섯구름이 일었다. 오후 5시,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인민대회당에서 음악무용극 ‘동방홍(東方紅)’ 출연자 3000여 명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1차 핵실험 성공을 발표했다. 이후 87년까지 32차례 핵실험이 있었는데 이 중 덩자셴이 직접 참가ㆍ지휘한 게 15차례였다. 84년 1차 핵실험 성공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덩은 자작시로 감회를 표했다.

붉은 구름 치솟아 하늘 끝까지 물들이고
거대한 원자탄의 힘은 땅을 뒤흔들었네
20년간 기를 쓰고 험한 곳을 기어올랐으나
지나간 세월이 덧없음을 이제야 알겠네

덩자셴은 청대(淸代)의 대시인이며 서예가인 덩스루(鄧石如)의 6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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