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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찾아서 신을 찾아서 헤맨 화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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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02면

독일 화가 막스 베크만(Max Beck mann, 1884~1950)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대학교미술관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선 몇 개로 강렬한 눈빛을 발산하는 판화 속 베크만의 자화상이 손님 얼굴에 겹친다. 베크만의 손녀 마이언 베크만(59)은 “할아버지 닮았다는 소리를 꽤 들었다”며 “몸집까지 닮은 건 아니다”라고 웃었다.

-독일 화가 막스 베크만의 손녀 마이언 베크만

미술사와 미술품 보존학을 전공한 그는 할아버지 작품을 관리하며 베크만의 미술세계를 세계 곳곳에 알리는 일을 해왔다. 이번 서울 전시는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베크만 개인전.

“1950년 아시아 지역 여행계획에 한국이 들어 있었는데 6ㆍ25전쟁이 터졌어요. 할아버지가 평소 동양정신과 불교에 관심이 많으셔서 한국 사찰과 문물을 둘러볼 꿈이 크셨는데 결국 포기하셨죠. 제가 고인 대신 온 셈이네요.”

그는 해인사와 불국사를 둘러보고 예불을 올렸다 한다. 절집이 옛 맛을 잃을 만큼 개축된 곳이 많아서 기대했던 만큼 기쁘진 않았다는 말도 했다.

“한국인에게 할아버지 작품을 처음 소개하게 돼 행복합니다. 이곳에 와서 미술사 연구자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베크만의 미술세계가 너무 정치적인 해설로 흐른 감이 있어요. 고인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운명, 인간과 신의 문제를 미술로 푸는 데 평생을 보냈어요. 이번에 한국에 온 ‘예술가와 시대의 자화상’ 속에서 베크만의 그 마음을 읽어보세요.”

베크만의 판화 세계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붙인 연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파우스트』에서 베크만은 ‘죽음을 기억하라’ ‘잠과 죽음’ 등 원작보다 더 심오한 생각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특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하리라’는 마지막 대목에서 여성적인 것을 부처의 자비심으로 해석하는 독특함을 보였다.

독일 베를린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 미술관에는 베크만에 관한 모든 자료를 모은 아카이브(기록보관소)가 있다. 4월 5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베크만의 대규모 회고전 개막 뒤 베크만의 홈페이지(www.maxbeckmann.com)가 개설된다. “한국과 할아버지의 인연이 깊은 모양입니다. 작품 속에서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해주세요.” 손녀는 할아버지의 자화상 앞에 오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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