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때 ‘3不’ 확립 현정부서 위력 발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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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08면

지난 22일 정부 중앙청사 브리핑실에서 교육부 김광조 차관보가 “‘3불 정책 유지’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이를 어기면 제재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정창영 연세대 총장은 24일 “상대방을 공격하고 끌어내리려는 이념 공방만 있지 생산적인 대화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3불(고교등급제 금지, 본고사 금지, 기여입학제 금지) 공방과 관련, “대학은 입시의 자율성과 경쟁력 확보를 강조하고, 정부는 공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며 “둘 모두 중요한 가치 아니냐”고 반문했다.

3不정책의 뿌리와 실체는

공격의 선봉장 격인 손병두 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서강대 총장)은 연락을 끊은 상태다. 정부는 ‘3불 대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선 주자들도, 시민단체들도 양분된 상태다.

이돈희 전 교육부총리(민사고 교장)는 3불에 대해 “단순한 입시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철학과 이념의 충돌이며 어느 쪽도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사생결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3불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1998년 2월만 해도 이념이 충돌하는 전선은 아니었다. 당시 김영삼(YS)정부 말기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제34조 2항)에 국공립대가 논술고사 외 필답고사를 보지 못하게 했다. 국어ㆍ영어ㆍ수학 위주의 본고사를 금지한 것이다. 사교육이 늘어난다는 이유에서다. 2000년 11월 이돈희 전 부총리는 사립대로 확대했다. 하지만 대학들은 수능이 갈수록 쉬워지자 “신뢰할 수 없다”며 지필고사를 보려 했다. 교육부는 2001년 본고사를 보는 대학에 재정지원을 중단하는 조항(제34조 3항)을 만들었다.

3불의 두 번째 축인 기여입학제 금지는 2001년 5월 등장했다. 현재 과학기술부총리인 김우식 당시 연세대 총장이 “학교 발전에 유ㆍ무형의 기여를 한 동문 자손 등에게 기여입학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당시 한완상 교육부총리는 “돈을 받는 기부금 입학이나 기여입학 모두 허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근거는 교육기본법 제4조, 즉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는 조항이다. 하지만 벌칙 조항은 없다.

고교 등급제도 비슷한 시기에 불거졌다. 일부 사립대가 특목고 학생들의 내신 불이익을 줄이려 한 흔적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2002학년도 대입 계획(교육부 고시)에 ‘고교 등급제를 금지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이로써 3불이 완성됐다.

현행 법률 어디를 봐도 3불이라는 용어는 없다. 이현청 호남대 총장(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법에 없지만 대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2004년 전교조는 고려대ㆍ연세대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수시모집에서 외국어고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줬다고 주장했고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3불정책이 위력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느 대학도 처벌받지 않았다.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3불은 현정부 교육이념의 금과옥조(金科玉條)”라며 “전교조와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이 3불의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현정부에서 3불은 깰 수 없는 성역이다. 이 때문에 현정부의 어떤 교육수장도 3불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3불을 재검토한다는 것은 이념을 포기하고 항복하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3불을 공격한 사립대 총장들은 현정부에서 이를 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정권의 레임덕이 가시화하자 대선 주자들에게 3불정책 폐지 이슈를 던졌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그때 가서 없애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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