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다다시의 와인의 기쁨 [1]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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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26면

'신의 물방울'의 공동 필자인 아기 다다시 남매. 왼쪽이 누나인 '아기 다다시 A', 오른쪽이 동생인 '아기 다다시 B'.

2004년 일본 출판사 고단샤(講談社)가 펴내는 주간 ‘코믹 모닝’에서 우리가 연재를 시작했을 때는 주위로부터 ‘와인이라는 마니악(소수 열성파만 열광하는)한 세계의 이야기가 호응을 얻을까요?’라는 등의 냉담한 말을 들었다. 그러나 지금 이 만화는 와인 애호가의 필독서가 된 것은 물론이고, 이제까지 와인을 마시지 않던 사람들도 와인의 포로로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와인 마니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에서는 작품 속에 소개된 와인이 순식간에 매진된다. 지난해 가을 ‘아기 다다시 & 오키모토 슈가’ 라벨의 기획과 디자인을 맡은 도멘 알베르 비쇼의 ‘보졸레 누보’는 목표한 84만 병이 바로 매진돼 발매원인 메르시앙사(社)를 깜짝 놀라게 했다.

와인은 술 아닌 인생의 깊은 울림

물론 우리 남매는 단순히 와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인공을 둘러싼 인간 드라마를 구축하는 데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 마니악한 만화가 이 정도로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역시 와인이라는 심원한 테마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판단을 하게 된 까닭은 지난 몇 년 우리가 겪은 체험 덕이다. 우리 남매도 마치 한눈에 반한 것처럼 와인에 빠져든 경험이 있어서다. 첫사랑 연인처럼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와인의 이름은 ‘DRC Echezeaux(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에세조) 1985’. 그때까지도 와인을 좋아해 곧잘 마셨으나 나에게 와인은 아직 단순한 술에 지나지 않았다. 그 ‘단순한 술’이라는 관념이 회식 자리에서 마신 이 한 병에 의해 깨져버렸다.
우선 와인을 글라스에 따름과 동시에 화려한 꽃향기가 피어난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마셔 보니 더 기가 막혔다. 싱싱한 산딸기 맛, 신맛과 과일맛의 단아한 밸런스, 달콤하고 부드러운 타닌(떫은맛), 정교하게 짠 교토의 직물처럼 복잡하고 우아하며 섬세한 피니시(술의 질), 그리고 어질어질할 정도로 오래 이어지는 여운….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옆에서 마시고 있던 남동생(아기 다다시 B)도 이거 대단하다는 표정이었다.

다시 곱씹게 되는 한마디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우리로 하여금 와인의 심오함에 놀라 그 세계를 보다 잘 알고 싶게 만든 ‘DRC 에세조 1985’와의 운명적인 만남.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의 기획은 이때부터 조용히 ‘숙성’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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