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4000위안으로 차 굴리며 생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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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04면

지난해 중국 주재원으로 발령나 올해로 베이징(北京) 생활 2년차인 A씨는 친분이 생긴 중국 공무원 B씨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고량주가 몇 잔 돌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월급이 화제에 올랐다. A씨는 대화 도중 B씨의 월급이 불과 4000위안(元) 정도란 얘기를 듣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가만히 한국 돈으로 환산해보니 고작 48만원에 불과했다. 올해 15년 정도 근무한 중견 공무원의 월급치고는 황당할 정도로 적어 보였다.

한국 돈 48만원밖에 안 되지만 부수입 짭짤하고 복리후생 제도 든든

베이징의 집값도 만만찮게 올랐는데 이 정도 수입으로 3인가족이 제대로 중산층 수준의 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싶었다. 중국 경제가 고속 성장한다고 떠들더니 중국인들의 소득 수준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내심 들었다. 그러나 B씨는 현재의 생활에 큰 불만이 없다. 월급 명세서에 찍힌 돈은 4000위안이지만 각종 수당과 복리후생 제도가 든든하게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홍콩의 한 신문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의 봉급이 기본급과 직무수당 등을 합해 한 달에 3000위안(약 36만원)가량 된다고 보도했다.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월급이 1000∼2000위안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을 이끄는 지도자의 월급치고는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다. 두 사람보다 직급이 한참 낮은 천즈리(陳至立) 국무위원이 최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위원들과 토론을 하던 중 “내 월급은 1만 위안쯤 된다”고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사실이라면 국가주석보다 3배 이상 많다는 얘기가 된다.

중국인의 월급 또는 한 달 수입은 외국인들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마치 양파껍질처럼 불투명하다. 도대체 중국의 중산층은 한 달에 얼마를 버는 것일까. 중국의 대표적인 중산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왕모(45) 교수의 월급 명세서를 들여다보자. 그는 언론학을 연구한 경력이 20년가량 된다. 가족으론 아내(44)와 딸(13)이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자네 월급 얼마 받나”라고 물으면 “5000위안쯤 된다”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대학에서 매달 발급하는 월급 명세서에 기록된 대로 1300위안의 기본급, 3700위안의 직무수당을 합쳐 대충 말한 것이다. 하지만 왕 교수가 월급 명세서에 찍힌 대로 매달 5000위안만 아내에게 가져다준다면, 아내에게 자주 바가지를 긁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그러나 왕 교수가 받는 돈을 ‘월급’이 아니라 ‘수입’이란 개념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매주 한 차례 정도 강의를 하고 강의비 명목으로 매월 1000위안을 따로 받는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시험을 보게 하면 출제비로 500위안이 또 들어온다. 인터넷 강의를 해서 별도로 300위안을 더 벌기도 한다. 대학원생 논문 지도비 또한 월 300위안이다. 베이징 근교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면 500위안의 세미나비가 따라온다.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 외부 강연 요청이 들어오는데 많게는 3000위안의 강사료를 받는다. 이런 부수입들을 합치면 월급보다 많을 때가 많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얘기다. 그의 아내는 “오늘은 또 무슨 명목의 수당을 받아왔느냐”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마련이다.

자, 그렇다면 이번엔 왕씨 가족의 씀씀이를 살펴보자. 120㎡짜리 아파트의 한 달 관리비가 200위안이다. 부식비와 수도료, 전기요금 등으로 2000위안가량이 나간다. 배기량 1600cc짜리 자동차의 기름값을 비롯해 전체 교통비로 800위안을 쓴다. 휴대전화 등 통신비가 300위안 정도다. 딸아이에게 피아노와 영어를 가르치는데, 이 사교육비가 500위안 정도 든다. 한 달에 한 번 근교로 가족이 나들이를 갈 때마다 300위안 정도를 지출한다. 매주 한 번씩 하는 외식비를 합치면 한 달에 600위안가량 된다. 여기에 기타 잡비 등을 감안해도 월 5000∼6000위안이면 3인가족 생활비로는 족하다. 결국 1만1200위안가량을 벌어서 5000∼6000위안가량 흑자를 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 3인가족이 5000위안 정도로 한 달을 보낼 수 있을까. 한마디로 어림없다. 특히 한국에서 누리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른바 ‘외국인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의 중산층이 사는 지역에 30평형대 아파트를 구하면 월세가 5000∼1만 위안은 된다. 중국인들이 먹는 값싼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없으니, 가끔 한국식당을 가는데 제대로 맛을 내는 식당의 음식 가격은 서울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왕징(望京)의 삼부자(三富者)와 서라벌, 인근의 애강산(愛江山)과 블루레이크, 대사관 밀집지역에 위치한 오죽헌(烏竹軒) 등 인기있는 한국식당들은 서울과 가격이 엇비슷하다.

중국인들이 가는 이발소는 10∼15위안이면 된다. 그러나 촌티 안 나게 한국식으로 제대로 깎으려면 적어도 50위안 이상은 줘야 한다. 중국인들이 1위안을 내고 버스 탈 때, 기본요금 10위안짜리 택시를 타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래저래 지출이 만만찮다. 1990년대 한국인들 사이에선 3000위안이면 왕징에서 한 달 버티며 사업구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초엔 5000위안으로 올라갔다. 최근엔 이것도 안 된다. 자영업을 하는 한국인 L씨는 “요즘엔 1만 위안 정도는 있어야 그럭저럭 중국에서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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