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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경제, 남북경협이 돌파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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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23면

주가가 신천지에 들어섰다. 코스피지수는 1500을 거뜬히 넘더니 좀처럼 내려올 줄 모른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만큼 뒷심도 좋다.

1500선 뚫은 코스피… 미국식 장기 상승하려면

증권가에선 부쩍 미국 얘기가 많아졌다. 미국 증시의 다우지수는 1960년대 중반 이후 1000벽에 부닥쳐 2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을 하다 1982년 1000 고지를 돌파하고 5년 만에 2000을 넘어섰다. 87년 블랙 먼데이와 2000년대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도 장기적인 상승추세를 꺾지는 못했다. 99년 3월 10000선을 돌파한 다우지수는 현재 13000선을 넘보고 있다. 미국에선 지수 1000선을 극복한 시간과 이후 10000선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대략 17년 정도로 비슷했다.

한국 증시도 과연 이런 경로를 밟을 수 있을까.

89년 처음 1000을 돌파했던 코스피지수는 다시 미끄러지기를 반복한 끝에 2005년에야 네 자리 수에 안착할 수 있었다. 꼬박 16년이 걸린 것이다. 유연의 일치인지 1000선을 넘어서기까지는 미국 증시와 매우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지금 한국 증시도 지수 10000을 향한 대장정에 들어서 있다고 진단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황소(주가 상승)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미국 증시도 이런 난관들을 극복했기에 오늘이 가능했고, 많은 투자자들이 주식투자를 통해 재산을 불릴 수 있었다.

주요 증권사들의 전망을 토대로 국내 증시가 한 단계 뛰어오르기 위한 조건들을 점검해본다.

◇신성장동력과 기업 실적=주가가 오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기업 실적이다. 이런 면에서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의 실적 개선 속도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평균 400%가 넘던 주요 대기업의 부채비율이 100% 이하로 떨어지고 순이익률도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수익성이 2년 연속 악화하면서 지금까지의 성장 방식이 한계에 도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 전체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다는 ‘샌드위치론’도 제기된다.

미국 증시도 20년 전 똑같은 고민을 했다. 80년대 초반 일본 기업이 무섭게 치고 나오면서 미국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세계 경제 수장의 자리를 일본에 내줄 거라는 우려가 확산됐다. 4세기 유럽을 휩쓴 아틸라의 훈족이나 13세기 칭기즈칸의 몽골족에 일본을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경제는 대대적인 체질개선을 통해 강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제조업 위주에서 서비스업 위주로 구조를 바꾸고 IT와 금융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냈다. 85년 플라자합의 뒤 달러가 줄곧 약세를 보인 것도 수출에 큰 도움이 됐다.

한국 증시의 운명도 신성장동력에 좌우될 것이다. 안동원 키움닷컴증권 전무는 “반도체와 휴대전화, 자동차를 이을 새로운 성장산업을 확보하는 한편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동북아 허브 등 경제의 글로벌화를 앞당길 정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FTA가 기업에 당장 큰 혜택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선진국에 비해 낮은 기업가치를 재평가하는 중요한 계기도 된다는 설명이다. 투자자에 대한 기업의 대우도 개선돼야 한다. 국내 상장사의 현금 배당률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선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간접투자의 확산=증시의 수급여건 또한 80년대초반 미국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당시 미국에선 401(k)이라고 불리는 퇴직연금이 도입돼 대중들의 소액 간접투자가 본격화됐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기금(캘퍼스) 등 연기금들이 본격적으로 주식투자에 나서고 뮤추얼펀드 투자가 본격화한 것도 이때부터다. 증시의 주력이 개인투자자에서 기관투자가로 바뀌면서 매수세가 강해지고 주식 보유기간이 길어져 주가 상승을 뒷받침했다.

국내에서도 3년 전부터 적립식 펀드를 통한 소액 장기투자가 활성화됐다. 지난해 퇴직연금이 도입되며 주식에 간접투자하는 수단이 하나 더 늘었다. 국민연금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사회보장비용을 세금으로 받아 바로 나눠주는 미국과 달리 연금을 장기간 적립하는 국민연금은 5년 전부터 주식투자 비중을 크게 늘리며 증시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우리투자증권 오태동 연구원은 “최근 5년간의 채권 수익률이 연 5%대에 머무르면서 주식투자에 소극적이던 보험사들도 주식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며 “장기적인 수급 여건은 갈수록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구와 남북관계=사람이 많아야 소비가 늘어난다. 또 생산가능 연령층이 많으면 생산성도 높아진다. 경쟁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국 증시와 80년대 미국 증시의 공통점을 여기서 찾는 견해도 있다. 양국 모두 주가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시점이 베이비붐 세대가 중년층에 접어든 때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40년대 후반∼50년대, 한국은 50년대 후반∼70년대 초에 아기가 많이 태어났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미래 인구구성은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민 등을 통해 미국의 경제활동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한국은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고령화 속도도 세계 최고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남북관계 개선이 돌파구라고 진단한다. 맞벌이가 많아지면 씀씀이, 특히 서비스 관련 소비가 많아진다. 육아ㆍ외식 산업 등이 자연스레 커지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풀리면 출산율과 관련된 많은 고민이 한꺼번에 해결된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특히 건설과 통신산업이 바빠진다. 개성공단에서 보듯 양질의 노동력을 저임금에 구할 수 있어 기업 경쟁력이 크게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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