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칼럼] 솔로몬을 보내주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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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얼마 전 중앙일보가 새 수습기자를 뽑았다. 근 1천여명이 지원한 가운데 겨우 7명만 뽑았다. 몇차례의 중간과정을 거쳐 20명이 최종 후보로 남았다. 최종면접에 참석한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웠다. 다 똑똑하고 야무졌다. 외국어 실력도 뛰어났다. 모두 훌륭한 기자가 될성 싶었다. 중앙일보에 들어오려고 지난해에 이어 재수까지 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 하루를 위해 수많은 세월을 애썼던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떨어진 젊은이들이 느낄 좌절, 뒤에서 조마조마 기다리는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다 뽑아주고 싶지만 경영하는 쪽의 회사 사정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짱짱한 젊은이 방황하는 나라

큰 기업체 사장을 만났다. 그 역시 똑같은 심정이었다. 경제가 어렵고 내년 전망도 시원치 않아 신문에 모집광고도 안 내고 회사 홈페이지 귀퉁이에 모집광고를 실었다. 1천명 가까운 응시자 중에 80명을 추려 면접을 했다. "다 뽑고 싶을 정도로 짱짱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내년 경제만 좋아진다면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애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고작 10여명을 뽑으면서 "마음 속에 분노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실력을 갖춘 젊은이들이 직장을 못 구해 방황해야 하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그는 지금 이 시절 사장을 하고 있는 기성세대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소한 그 나라에서 10위 안에 드는 대학을 나와 일자리가 없어 방황한다면 그것은 나라의 책임"이라고 선언했다.

대학을 나와 구청 환경미화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다면 이게 나라라 할 수 있는가. 직업의 귀천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학을 나올 때까지 들인 공을 생각해 보라. 당사자는 물론 그 부모 입장이 되어 보라.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는가. 중앙일보 직원들이 '아름다운 가게'에 물품을 내어 지난 주말 잠시 봉사를 했다. 가게 문이 열리기 전 벌써 장사진이었다. 추운 토요일 아침 젊은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몰려와 책을 골라주는 모습은 눈물나도록 아름다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저렇게 공들여 기른 우리 아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게 되고, 대학을 나와도 환경미화원밖에 안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부를 탓하기도 이제는 지쳤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될 리 없어, 잠시 지나면 곧 좋은 세월이 오겠지"하고 생각해 보지만 정말 지금의 고통이 잠시이고 곧 우리는 좋아질 수 있을까.

'차떼기'로 돈을 실어 나른 자들이 누구인가. 그래도 동료 변호사 중에 평판이 있던 사람들 아닌가. 왜 그랬을까. 선거를 치르자면 어쩔 수 없이 돈이 들어가니 할 수 없이 그런 것이라고?

부패한 수구보수니, 기성세대니 떠들며 '정의'를 입에 붙이고 사는 코드 맞는 젊은이들은 어떤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먼저 배우는 것이 '돈' 도둑질이니 '모두 도둑놈'이라는 말밖에 나올 것이 무엇인가. 그런 이 나라에 과연 희망이 있겠는가.

대선자금의 최종 책임자 중 한 사람인 이회창씨는 검찰로 걸어 들어갔다. 남은 한 사람인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될까. "나는 너보다 수백억원이 적으니 너만 책임져라"고는 할 수 없다. 불법자금이 10분의 1이든, 1백분의 1이든 불법은 불법이다. 감옥에 가더라도 이 두 사람이 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 없다.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회창씨 혼자만 감옥에 가야 하는가. 그것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이회창씨를 감옥에 넣지 못하는데 그 밑에 있던 사람만 넣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러면 다 풀어주느냐? 대통령은 10분의 1이라는 가이드 라인을 주면서 그것이 넘으면 대통령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검찰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 아래 선으로만 수사를 해야 할지, 야당 것만 적극적으로 파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칼을 휘둘러야 할지, 칼을 휘둘러 10분의 1 이하라고 말한들 국민이 믿겠는지….

*** 10분의 1 이하로 수사해야 하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자금의 분량만큼 칼로 베어주길 바라고 있다. 그것이 공평한 것이라고 은근히 부추긴다. 칼로 베면 어느 쪽이 많든, 적든 다 죽고 만다. 그러는 사이에 나라는 방향도 없이 계속 떠내려 간다. 해외에서는 '차떼기'로 돈을 준 회사들을 어떻게 믿고 투자하겠느냐며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내년에는 거리를 헤매는 젊은이가 더 늘어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저희에게 솔로몬을 보내 주십시오.

문창극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