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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음많은 미 “신종뇌물”… 정치헌금(세계의 뒤안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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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저녁 한끼에 최고 2억원/공화당 만찬 모임 4천여명 초대/액수따라 테이블 위치 따로 정해/거액모금 말썽… “정경유착의 장” 비난
저녁 한끼값이 25만달러(약 2억원)라면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돈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칼 린드너 소유의 아메리카 금융회사가 분명히 지불한 돈이다.
올 11월 대통령과 상하 양원의원 선거를 앞둔 미국에서 요즘 민주·공화 양당의 정치자금 모금 디너파티가 비난의 도마위에 올라있다.
미 정당들의 파티를 통한 정치자금 모금은 기업들에 대한 헌금 강요나 전국구 자리의 매매 등 어두운 장막뒤 거래로 특징지어지는 한국과는 달리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것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이같은 공개적인 정치헌금 액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지고 이같은 거액 현금이 기업이나 부자들로 하여금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이용돼 정경유착으로 정치가 부패해질 것이란 우려때문이다.
74년 제정된 미 선거자금 모금법은 연방선거직 후보에게는 개인들로부터 2천달러 이하의 헌금을 받을 수 있고 정당들은 정당활동을 위한 모금을 무제한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당연히 양당은 헌금액수가 제한되는 후보 개인의 모금활동보다는 무제한 헌금을 받을 수 있는 정당모금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이같은 정당헌금이 이슈로 제기된 것은 최근 열린 공화당의 대규모 디너파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부시­퀘일팀의 재선과 의회의 지배를 노리는 공화당은 하루 저녁 워싱턴에서 4천3백명을 초대한 대규모 디너파티를 열었다.
부시대통령과 퀘일부통령,그리고 영향력있는 공화당의 의회지도자들과 고위 당간부들이 참석한 이 파티에 참석한 개인은 최소한 1천5백달러(1백20만원)를,기업들은 최고 25만달러를 헌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금액수에 따라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들과의 자리를 같이할 식탁이 정해지는 이 파티에서 미 정치자금모금 사상 최고인 약 8백만달러(약 64억원)가 모였다.
참석자들이 즐긴 고기에서 음료·양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기업들의 직·간접헌금으로 충당돼 공화당은 돈 한푼 안들이고 엄청난 정치자금을 긁어모을 수 있었다.
이 파티는 그러나 거액 모금에 따른 물의와 정치적 영향력을 사고 파는 정경유착이란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파티기획에 참여한 인사들이 자기회사 종업원들에게 헌금을 강요하거나 회사돈을 헌금한 이유로 소송을 당하는가 하면 정치감시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위스콘신주의 한 기업종업원들은 이 파티를 위한 헌금 강요를 이유로 지난주 회사간부들을 법원에 고발했다.
공공시민 등 정치감시기구들은 『이 파티가 돈이 정치과정을 부패시키는 좋은 예』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 파티가 「고위정부 관리들에 대한 접근을 파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파티조작자들이 공화당과 영향력을 찾으려하는 사람들 사이에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신종 뇌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당의 디너파티를 통한 선거자금 모금은 민주당도 하고 있으나 대기업과 부자지지층이 많은 공화당 파티에 몰리는 돈이 엄청나게 더 많다.
지난 88년 선거에선 민주·공화 두 당이 이같은 방법으로 모금한 돈이 4천3백만달러에 이르고 올해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민간 정치압력단체인 시민연구재단은 추정하고 있다.
기성정치권의 부패한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증가되고 있는 가운데 아무리 합법적인 모금행위라고 해도 과연 엄청난 밥값의 대가가 고작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과의 몇시간의 대화만으로 끝나겠느냐는 비판은 앞으로 미국의 정치자금 모금방법에 개혁의 소리를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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