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과 손잡는 YS/전 전대통령 방문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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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골수 민정계 어루만지는 전기/총선때부터 양자간 호감교류
범여결집을 위한 김영삼민자당대통령후보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최규하 전대통령에 이어 김 후보가 22일 전두환 전대통령을 찾아간 것은 단순한 예방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다.
6공초 야당총재로서 5공청산과 전 전대통령의 백담사행을 주장했던 김 후보가 이제 여당의 대통령후보로서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춰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정치무상·권력무상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기도 하다. 정치판엔 영원한 적도,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YS의 연희동방문이 5·6공 갈등을 씻고 여권이 단합하는 새로운 전기를 만들 수 있을지 지켜보는 눈들이 날카롭다.
○…여당 대통령후보로서 김영삼대표가 떠안은 제1과제는 범여결속이다. YS로서는 지난 총선에 민자당이 미워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정주영의 국민당에 던진 표와 민자당 전당대회에서 한사코 그에게 등을 돌린 33%를 되찾아 오지 못하면 여당후보로서 절름발이를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당에 간 표가 3당통합후 민자당이 보인 무능·무정견에 대한 실망내지 반발표라면 이종찬에게 던진 33%의 대의원표는 야당투사 김영삼을 한사코 거부하는 골수 여당의 보위 본능의 표시로 볼 수 있다. 그만큼 김 후보는 국민에게 실추된 여당의 위상을 찾아야 하고,아울러 범여권의 신용도 얻어야 하는 2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
그중에도 이종찬의원에게 간 33%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시급하고,그러자면 민정계의 원조인 전두환 전대통령과 호의적 관계를 조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호남을 제외하고 YS를 거부하는 골수 민정계를 어루만지는데는 전 전대통령의 존재를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자신의 이같은 약점을 알고,실은 지난 총선때부터 후보가 되고난 뒤의 처지를 상정해 내막적으로 연희동캠프와 꾸준히 관계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전 전대통령의 직계인 박희도 전육군참모총장과 고명승 전보안사령관에게 민자당공천을 주자고 제의한 사람이 바롤 YS였다. YS는 또 전 전대통령의 동서(김상구)가 출마한 지역엔 일부러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눈에 띄지 않게 연희동에 친근감을 전달했다.
YS의 이같은 호의는 전 전대통령으로부터도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대통령은 자신을 찾아온 김정례씨에게 『내가 YS를 거부한다는 소문은 모두 나와 YS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세력의 조작』이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암묵리에 YS가 대통령이 되는게 나쁘지 않다는 느낌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설왕설래에 대해 민정기비서관은 『아직 전 전대통령이 김 후보에 대해 구체적인 의사표시는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YS가 예방하는데 대해 연희동측은 외견상으로는 『본인이 온다니 만나는 것일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전­YS관계진전에 별로 싫지 않은 기색이다.
차기대통령의 가능성이 있는 여당후보로부터 공개적 예우를 받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더욱이 지난 4년간 만신창이가 된 전직국가원수로서 명예회복에 대한 욕구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 전대통령은 함부로 표정을 나타낼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현실정치에 초연한 전직대통령으로서 어느 한쪽편만 들 수 없는 제약이 있다. 만의 하나 자신의 처신이 특정후보나 특정정파의 편가르기에 악용되면 잊혀져가는 여론의 미움을 되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노태우대통령이 총재로 있는 현 민자당에 대해서는 위화감을 씻을 수 없고 전직국가원수로서 사심없는 원로가 되고 싶은 궁극적 목표를 늘 생각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작은 「사건」같지만 지난달 차남 재용군 결혼식땐 김대중대표가 축하화한을 보내주었고 노 대통령과 비교한 야당의 자신에 대한 재평가 기운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처지다.
연희동의 한 측근은 『민자당 후보라고 해서 손을 들어줄 이유가 없다. 전 전대통령을 따르던 인사중에는 민자당뿐 아니라 국민당과 무소속으로 간 사람도 있고 이종찬의원 진영에도 있다. 김대중씨도 똑같은 제3자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총선후 연희동을 다녀간 인사중에는 민자당의 권익현·박준병·허삼수의원뿐 아니라 국민당의 김정남·이주일·김두섭,무소속의 정호용·허화평·강창희·하순봉당선자가 있고,민주당의 김상현당선자도 있다는 것이다.
○…연희동측이 YS에 대해 다소 호의적인데 반해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직도 앙금을 풀지 못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그동안 노·전 화해를 주선하려 했지만 『연희동에 찾아와 사과하지 않으면 마음으로부터 용서할 수 없다』는 전 전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이 그짓만은 못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있다.
요즘와서 전 전대통령이 『나는 만신창이가 됐으나 노 대통령마저 상처를 입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그가 나처럼 안되게 필요하다면 나서서 막아줄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 대통령이 먼저 사과하고 난 뒤의 일이라는 것이 측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 4년간 청와대와 연희동간에는 일반에 알리기 어려울 정도의 험악한 대치가 여러번 있었고 그같은 갈등의 내용이 거의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 후보가 어떤 중재를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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