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과학 지식은 단단? 어디 깨 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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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식의 불확실성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유희석 옮김, 창비,
296쪽, 1만5000원

과학적 지식이란 과연 얼마나 견고한 기반 위에 서 있을까. 또 지식이란 가치관이나 주관을 깡그리 배제한 채 투명한 객관성만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1차 자료와 관찰, 비교와 분석, 실험과 검증을 통해 확고한 지위에 오른 지식은 정말로 의심할 여지가 없을까.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이번엔 지식의 불확실성에 대해 물고 늘어졌다. 그는 책 머리에서부터 우리가 과학이라고 인정해주는 각종 학문적 지식의 토대를 가차없이 흔들어댄다. 지식에 대한 급진적인 회의론이다.

특히 과학적 탐구가 반드시 과학적 객관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며 과학주의 자체에 숨어 있는 비과학성을 폭로한다. 예컨대 사회과학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라고 자부하는 경제학은 흔히 '다른 것이 같다면'이란 가정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는 모든 것을 동시에 고려하기 어렵기 때문에 직접적인 변수 이외의 요인을 잠시 덮어두려는 것이라고 월러스틴은 지적한다. 사실 현실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어느 한 요인이라도 무시하면 엉뚱한 결론으로 흐르는 법이다.

월러스틴은 이런 식으로 여러 학문 분야에서 나타나는 지식 기반의 취약점을 들춰낸다. 각 분야의 학자들에겐 마치 지적인 지진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우리의 지식 가운데는 이 지진을 견뎌내는 것보다는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게 더 많지 않나 싶다. 단단해 보이는 지식 체계도 월러스틴의 회의론 앞에선 사상누각일 수 있다. 진정한 앎이란 그만큼 어렵고도 먼 길이라는 뜻일까.

그러나 책장을 덮기 전에 하나 반성해보자. 도대체 우리가 월러스틴에게 비판받을 정도로 과학적이기나 했는지.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지는 않았는지. 또 그러면서도 지식인이라고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보수다, 진보다 하며 이념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얼치기 '먹물'들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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