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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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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쇼를 하라'는 TV 광고가 요즘 눈길을 끈다. 자신을 한껏 드러내 보이라는 권유로 들린다. 늘 머뭇거리면서 남 앞에 나서기 어려워하던 과거 한국인의 습성은 요즘 많이 바뀌었다. 광고에서 거침없이 "나를 드러내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

요즘의 중국인들도 쇼에 민감하다. 유명 정치인 등이 뻔히 속내가 내비치는 행동을 하면 "저 사람 쇼한다(作秀)"고 냉소한다. '쇼'라는 외래어를 발음이 비슷한 '슈(秀)'로 옮겼다.

쇼를 한다는 표현은 그 연원이 제법 깊은 중국의 고사에도 나타난다. 한번 놀아보자는 뜻의 '작희(作戱)'다. "평상심이 곧 도"라고 얘기했던 당대 마조(馬祖) 선사에 얽힌 얘기다.

그의 제자 은봉이 길을 떠나고 있다. "어딜 가느냐"고 마조가 물으니 제자는 "돌머리(石頭) 대사에게 갑니다"고 답한다. "돌 길이 미끄러울 텐데?" 제자는 거침없이 답한다. "막대기 들고 가니(竿木隨身), 때맞춰 한번 잘 놀아 볼 작정입니다(逢場作戱)."

내용인즉 은봉이 이름 높은 석두 대사와 선문답으로 한번 맞짱을 뜨겠다는 것이다. 선에 관한 것이라서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나 내 맘에 깨달음이 있으면 어느 상황, 어느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 성어를 읽으면 된다.

길거리에서 자신의 재주를 팔아먹고 사는 과거의 예인(藝人)들이 즐겨 썼을 법한 얘기다. 한 판 만들어지면 걸지게 놀아 본다는 뜻으로 말이다. 결국은 쇼를 한다는 얘긴데, 요즘의 중국에서는 엉뚱하게 바람 피우는 남성의 경우를 일컬을 때 자주 쓰인다.

우리 정치인들이 판을 북한으로 옮겨 쇼를 해 볼 작정인가 보다. 여권의 내로라하는 의원들이 줄줄이 방북해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그 의도를 두고 여론의 비판이 만만치 않다. 대선용으로 우려먹을 요량이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하기야 대남 문제에 관해서는 전략과 전술로 속을 가득 채운 북한 관리들에게 어설픈 동포애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디까지나 큰 전략적인 구도 아래에서 그들을 대해야 한다. 쇼 좋아하는 정치인들이 북한 문제를 쇼 판으로 끌어들인다면 우리의 대북 정책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라면 그 판을 거두는 게 좋겠다.

참, 석두 대사와 한번 붙어 보겠다는 야심이 앞섰던 은봉은 결국 참패하고 만다. 쇼 정신으로 무장은 했지만 역시 당대 선종의 거봉이었던 석두 대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쇼는 정말이지, 그냥 쇼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