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LA 흑인폭동 왜 일어났나(폭발한 「검은 분노」: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 소수민족정책 문제있다/인종별 이민쿼타제로 균형 유지/백인위주정책 계속… 예고된 참변
앤드리아 리치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문화간 커뮤니케이션학회 71년 학술회의에서 미국내 인종간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모델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인종관계연구에 고전이 되고 있는 이 모델은 백인과 지구상의 비백인사회를 대표하는 두 원을 약간 겹쳐 두고 이 겹친 부분에 속한 사람들을 미국의 소수인종으로 정의하고 있다.
리치 교수의 결론은 미국사회에서 소수 인종은 절대 주류백인사회에 편입될 수 없고 백인역시 절대 소수인종의 맴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델은 이번 폭동이 왜 일어났고 한인사회가 왜 큰 피해를 보았으며 백인경찰이 한인들의 보호요청을 외면했는지에 함축적인 설명을 해주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온 흑인들을 제외하면 타인종 이민은 흑인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광범한 인식이다.
노예해방후 역사의 유산인 흑인문제를 완전 해결할 수 없음을 발견한 백인들이 소수민족대 소수민족의 대결구도를 마련함으로써 흑인들의 보복을 피하려는 음모에서 새 이민정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민으로 건설된 나라가 자유와 더 좋은 삶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밖으로 발표된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까지 미국의 이민사를 보면 앞서 주장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
미국은 40∼50년대까지도 우생학적 이론에 바탕을 둔 백인우월주의의 교육과 이민정책이 실시되었다.
그후 국적별 쿼타제에 바탕을 둔 이민법이 65년 폐기되면서 여러인종에 이민이 허용되었는데 이는 로스앤젤레스 와츠지역의 흑인폭동이 있은 직후였다.
한 인종문제학자는 미국정부가 외국인의 입국시 소속인종을 보고토록 하고 매년 나라·인종별 이민쿼타를 책정하고 있는 것은 백인들이 바람직한 인종균형을 유지키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번 폭동에서 경찰들이 한인들의 구원요청에 귀를 닫거나 한인상가 약탈현장에서 오히려 꽁무니를 뺐고 미국 언론들이 한인상인들이 무장하고 폭도들과 대항하는 장면을 계속 보도하고 있음은 의도적이 아닐지 몰라도 이같은 백인들의 시각이나 정책을 어느 정도 설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같은 정책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흑인들의 폭력과 범죄대상은 초기 백인에서 점차 유대인,그리고 자신과 같은 인종인 흑인으로 바뀌는 추세를 보였다.
흑인에 대한 흑인들의 폭력증가는 일부 부유한 흑인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백인들의 특혜를 받았다는 인식과 얼마되지 않는 빵 싸움으로 분석되었다.
한국인등 아시아인들이 흑인들의 증오의 대상이 된 것은 80년대 후반 이들 이민이 미국사회에서 근면으로 경제기반을 닦고 학교에서도 2세들이 우수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 이후다. 이번 폭동과 관련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주는」백인사회의 정책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60년대 미 전역을 휩쓴 인종폭동후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에 의해 구성된 시민폭동 국가자문위원회는 6백50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를 통해 흑인폭동의 원인과 과정,그리고 향후개선점을 상세히 제시했었다.
여기서 근본 동기로 ▲지속적인 차별 ▲가난한 흑인들의 도시집중과 빈민촌 형성 ▲좌절된 희망 ▲언론 등의 흑인문제 외면으로 인한 무력감 ▲경찰의 불공평한 법집행 등이 지적되었고 국가차원의 대책으로 ▲흑인들에 대한 교육·고용의 확대 ▲사회복지제도의 개선 ▲주택문제 개선 등을 제시했었다.
이후 민권법이 개정되는등 일부 개선도 있었으나 이 보고서후 25년이 지난 오늘 법집행과정에서의 차별은 이번 킹사건에서 보듯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레이건 대통령이래 흑인들이 주대상인 사회복지는 크게 후퇴했다.
미국은 이번 사건으로 흑인들의 차별해소와 경제환경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주류백인과 소수인종간의 인종이동이 차단되어 있고 소수인종이 백인중심사회 유지의 수단으로만 이용되는 정책이 계속될때 세계의 인종과 문제가 한데 어울린다는 『인종의 용광로』는 언제나 『인종갈등의 뇌관』이 될 잠재성을 안게 될 것이다.<뉴욕=박준영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