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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참여로 민주당 선전 가능성/미 대선에 미칠 LA폭동의 영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고질적 문제 내세워 공화 공략/냉소주의 확산 야 불리 시각도
로스앤젤레스에서 발단,미 전역으로 확산된 흑인폭동·시위가 오는 11월 미 대통령선거를 좌우할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
각당이 예비선거를 벌이고 있는 미 대통령선거 유세전은 그동안 경기침체 및 국력쇠퇴의 치유방안을 둘러싼 공방만으로 맥빠진 상태에서 진행돼 왔다. 상대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이 그나마 약간의 열기를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유세전이 달아오르고 비교적 무관심했던 흑인들이 올해 선거에 본격가세할 경우 조지 부시 대통령에 비해 일방적인 열세를 보였던 민주당측이 의외의 선전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 선거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 경선자 빌 클린턴아칸소주지사가 이런 호기를 놓치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클린턴주지사는 폭동이 발생하자마자 부시행정부를 격렬하게 공격하고 나섰다. 부시대통령이 인종과 빈부격차문제에 소홀했다고 비난했다.
역사적으로 미국 정치의 가장 큰 고민은 여러 민족·인종간의 조화화 화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흑인문제는 다른 민족의 유입과정과 달리 독특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어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도 아니다. 따라서 클린턴의 전략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시대통령을 흑인문제라는 미국의 고질적인 진창에 가능한한 오래 몰아넣어 정치적 상처를 주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놓고 클린턴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제리 브라운 전 캘리포니아주지사는 네브라스카주에서 예정했던 유세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본인의 설명은 분노한 흑인들을 진정시키겠다는 것이지만 속셈이 무엇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부시대통령은 그러나 제발로 호랑이굴에 들어갈리는 없다. 부시대통령은 폭동이 발생하자 연방군 투입과 정부차원의 조사를 명령하는등 일견 신속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번 사태에 일정거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인종·흑인문제가 민주당의 텃밭인데 섣불리 나섰다가는 백인보수세력들의 지지조차 삭감당할 가능성만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번 폭동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해야 하는 본연의 임무에는 충실하되 이번 사건이 정치쟁점화 되는 것은 차단해야 한다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부시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은 말린 피츠워터백악관대변인이 클린턴주지사를 두고 국민들이 죽어가는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비난한데서 잘 드러난다.
이번 사건이 흑인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촉발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오히려 정치적 냉소주의가 확산,가뜩이나 줄어들고 있는 투표참여율이 더욱 감소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흑인들의 지지를 독점해오다시피한 민주당이 더욱 불리해지리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미 전역의 각종 선거를 통해 공직에 진출하는 흑인들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그 증가율은 70년대 이래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는 흑인들이 자신들의 이해증진을 위한 방법으로 정치과정참여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이번 대통령선거에 유력한 흑인후보가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흑인들의 투표참여율 감소추세를 반전시킬만한 결정적인 요소는 아직 없다.
따라서 이번 흑인 폭동·시위사건이 올가을 대통령선거에서 어떻게 나타나리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ABC방송과 워싱턴 포스트지가 지난달 30일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흑백을 막론하고 절대다수가 로드니 킹 구타경찰을 유죄라고 생각하는 만큼 이번 폭동사태와 평결의 정치쟁점화만은 불가피하다.
특히 이번 폭동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이미 외교에는 유능하지만 내치와 국내 경제에는 무력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부시대통령의 지도력이 결정적인 상처를 입을지 모른다. 부시대통령의 압승이 예상되던 선거전에 새로운 돌발 변수가 생긴 것이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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