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흑 갈등 조장하는 미국/한성찬 LA지사 사회부장(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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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29일 밤 사우스 센트럴지역의 한인업소 1천여곳에 방화·약탈을 자행했던 흑인폭도들은 30일 LA 한인타운을 습격,1일 새벽까지 한인타운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이날 아침 한인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폐허가 된 자신의 삶의 터전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가운데 LA시장실과 경찰당국은 『이젠 LA시가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았다』고 천연덕스레 발표했다.
시장실의 발표를 접한 교포들은 『폭도들이 백인지역 근처까지 가다 말았으니 평정이라는 말이 맞긴 맞는다』고 자조했다.
너무도 공교로운 일들이 이번 폭동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교포들은 흑인폭동보다는 더 지독한 「계산된」폭력에 희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흑인폭도들이 한인업소에 끊임없이 방화·약탈을 자행하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공권력을 보고 교포들은 『만일 백인지역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떠했을까』하고 분개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렇게 부족하다던 경찰력이 백인거주지역인 베벌리힐스에 폭도들이 접근하자 삽시간에 순찰차 여러대가 동원돼 얼씬조차 못하게 했다.
교포들은 결국 한인사회가 페허가 된 후에는 공권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 예상과 너무나 똑같이 더 이상 털 한인업소가 없을 정도가 된 상태에서 흑인폭도들이 베벌리힐스와 역시 백인이 많은 글렌데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자 때맞춰 경찰력이 증강되고 주방위군이 투입됐다.
피트 윌슨 캘리포니아주지사는 주방위군 실탄지급이 늦어져 충돌시간이 지연됐다고 변명했고 대럴 게이츠 LA경찰국장은 폭도들을 자극했다가는 부족한 경찰력으로 진압할 수 없어 방관했다고 발뺌했다.
그랬던 주방위군과 경찰력이 삽시간에 투입,증원된 것이다.
로드니 킹 구타사건 무죄평결후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흑인들의 불만고조를 보도하면서 교묘히 한·흑간의 갈등구조를 끼워넣었다.
결국 흑인사회의 백인에 대한 불만을 고도의 정치력·방관,미국언론의 비열한 협조로 한인사회로 돌리게 했다는 교포들의 추측이 사실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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