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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부검의' 박대하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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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98년 7월. 35세 청년 의사의 발걸음은 전라남도 장성군을 향했다. 그곳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분소가 있다. 의대 동기들이 대학병원으로, 도심의 개업의로 나설 때 병리학과 출신의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죽음 뒤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낸다는 점에 매료돼서다.

하지만 현실은 열악했다. 혼자 매일 많게는 10여 건의 부검을 해야 했다. 부검실에만 매일 4시간 이상 있을 때가 허다했다. 포르말린 냄새는 계속 맡아도 적응되지 않았다. 격무에 시달리며 '첫 부검의 기억'도 희미해졌다.

만 9년이 가까워진 올 초 장성을 떠나 서울 본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손에 맡겨진 시신이 3000구를 넘었다. 베테랑이라 할 법하지만 부검 시 느껴지는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숨진 사람은 입을 열지 않는다. 시신과 '독대(獨對)'하며 사실을 밝혀낸다. 왜 죽었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밝혀내는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다.

국과수 김윤신(45) 법의학과장의 얘기다. 법과 의학이 결합한 법의관. 정의를 재단하는 법과 소우주인 인체를 다루는 의학이 결합한 이 단어에는 화려한 전문직의 뉘앙스가 풍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부족한 인력 때문에 미국의 두 배가 넘는 격무에 시달린다. 의대 동기들과 비교할 때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김 과장은 "3년차 때가 위기"라고 했다. 빡빡한 업무량, '부검의'라 폄훼하는 사회의 시선 때문에 법의관을 꿈꾸며 품었던 '환상'이 깨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독립성이 없어 아쉽다고 한다. 법의관은 검사의 지휘에 따라 부검한다. 부검 필요 여부를 따질 때 법의관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김 과장은 "때로 '전문화된 기능직'이라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선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법의관의 판단에 따라 수사 방향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한국 국과수 법의관에게 미국 드라마 'CSI(Crime Scene Investigation.범죄현장조사반)'의 화려함은 없다. 묵묵히 일하는 그들이 자부심을 갖고 '주검 속에 숨은 진실'을 추적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과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권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