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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외화유출 방지책 없는가(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제화와 개방화라는 세계경제 흐름에 맞게 관계 법률과 규정을 바꾸어 놓아도 실물경제의 밑바닥에서부터 이것이 이행되지 않거나 정부 책임자의 실현의지가 약할때는 오히려 역작용이 나타난다.
시중은행 여행자수표 판매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2억4천만달러를 불법 밀반출한 행위도 바로 그런 유형이다.
작년에는 대기업의 책임있는 경영자가 12억여원의 주식매각대금을 미 달러로 바꿔 밀반출하고 여행사가 해외여행 경비한도를 초과한 금액을 해외로 몰래 송금한 일도 있었다. 부동산 투기 등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해외금융브로커들과 짜고 국내 시중은행 등에서 발행한 거액의 자기앞수표를 미국·홍콩 등에서 70% 정도 할인받아 달러로 바꿔 쓴 사건도 발생했다.
여행자 및 기업인들의 출입국이 잦아지고 돈의 이동이 빨라지면서 거액의 국내자금이 불법 부당한 방법으로 빠져나간다면 통화와 국제수지관리에 매우 어려움을 줄 것이다. 더욱이 금융개방과 함께 국내에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은행 지점들이 해외지점과의 변칙적인 거래형식을 빌려 외화를 조달하는 경우도 있어 외환거래에 대한 관련법규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정부의 감독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겠다.
올해부터 자본시장이 단계적으로 개방되는 것과 때를 맞추어 정부는 외환관리법을 「원칙금지·예외허용」에서 「원칙자유·예외규제」 체제로 1백80도 바꾸었다. 외화자금의 상당부분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하면서 예상되는 변칙거래는 규제조항에 집어 넣었다.
그러나 당초 우려했던대로 은행 실무부문에서는 여러가지 허점들이 나타났다. 환전업무를 맡고 있는 은행원들이 수수료수입을 늘리기 위해 여권원본 대조절차를 생략한채 달러표시 여행자수표를 판매,유출시켰으며 이러한 행위가 공개적이고도 경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제도는 훌륭하나 실제로 이를 지켜나갈 말단 행정 및 금융계 조직이 갖추어지지 못했다. 환전업무의 개별심사에 따른 금융기관 및 고객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은행 창구에서의 여권원본 대조로 일을 끝내도록 했는데도 이마저 지켜지지 않아 재발을 막기 위한 당국의 조치가 불가피하다.
또 세관당국도 외화불법 유출 단속에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외국통화표시 여행자수표 뿐만 아니라 원화 수표도 검색기계에서 체크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외국의 관계기관에 기술자문을 요청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들은 개방경제하에서의 자유로운 자금이동을 근본적으로 해치지 않는 선에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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