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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사례로 본 실제(신산업정책: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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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기업통합으로 전략산업 육성 영국/방위산업·특정기술 공동개발 EC
영국정부는 최근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일본식 산업정책의 도입을 추진,주목을 끌고 있다.
메이저 총리는 이달초 무역산업부장관에 제조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주장하는 마이클 헤슬타인 전 환경장관을 임명하는 동시에 에너지와 고용부가 관장하던 중소기업정책부문을 무역산업부에 이관,무역산업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이는 에너지청과 중소기업청을 산하에 두고 있는 일본 통산성의 제도를 본뜬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영국정부는 이와 함께 행정지도에 의한 기업의 정리·통합을 통해 특정산업을 육성하고 전략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조금지원이나 민관합동 프로젝트의 형태로 민간기업의 연구개발을 촉진할 계획이다. 영국정부의 이같은 조치를 두고 일본식 산업정책을 그대로 모방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번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주는 사례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영국의 움직임은 1∼2년전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산업경쟁력 강화대책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EC(유럽공동체)는 창설이후 줄곳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여겨왔으나 80년대 중반이후 일본과 미국에 비해 경제력이 뒤떨어진데 대한 반성으로 적극적인 산업육성책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C국가들중에서 산업정책에 대한 EC의 개입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나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가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EC는 지난 87년 미국에 대해 2백27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냈으나 89년 적자로 반전,91년에는 3백2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일본에 대한 적자폭은 계속 늘어나 지난해 4백억달러에 달했다.
산업정책 개입론자들은 EC의 보조금이 전산업에 고르게 지윈되기 보다는 자동차·전자·섬유·방위산업 등 몇몇 분야에 집중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2차대전이후 유럽을 따라잡기 위해 경제개발기에 도입했던 산업육성전략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EC는 회원국간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통일된 산업정책을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방위산업과 특정기술분야에서는 이미 공동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EC는 미국과 일본에 비해 기술력이 뒤떨어진 것은 연구개발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분석,연구개발투자비를 올해 30억달러에서 97년에는 52억5천만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EC는 또 반도체·고화질TV·무공해자동차의 개발과 함께 종합광역통신망 구축을 위한 레이스(RACE),신소재개발을 위한 유램(EURAM) 계획등 대형공동연구개발사업을 추진중이다.
일본에 비해 경제력이 점차 쇠약해져가고 있는 미국도 냉전종식에 따른 국방예산의 감축을 계기로 민간의 기술개발지원등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폭을 넓혀가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비국방관련 기술개발을 위해 내년예산에 3백억달러를 별도로 잡아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등의 산업정책은 일본등의 예를 들어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점에서 최근 국내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신산업정책」과 비슷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기술드라이브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우리나라처럼 부의 불균형과 경제력집중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성격은 다르지만 이처럼 새로운 산업정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경제전쟁이 치열해지면서 각국 정부가 자국의 산업경쟁력 회복을 당면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평지돌풍의 신산업정책 논란을 벌이기보다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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