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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아침] '조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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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등' - 남진우(1960~ )

장례식장에 걸린 조등 하나

바람도 없는데 잠시 흔들리다 멈춘다

죽은 이의 입김이 스쳐 지나간 걸까

죽은 이의 눈빛이 머물다 간 걸까

산 사람들만이 부산히 오가는 장례식장 입구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조등 하나

누군가에게 전할 말이 생각난 듯

잠시 흔들리다 멈춘다


오래전 당신이 지상을 떠날 때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때 회화나무 우듬지를 딛고 있던 반달이 당신을 위한 조등인 줄 알아챘고요. 당신의 입김이 지상의 한 녘에 마지막으로 와 닿는 것 느꼈더랬습니다. 가만히 눈 감고 있었습니다. 뜨겁고 착한 당신의 눈빛이 조등 밑자리에 우묵하게 고였더랬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한참 후, 당신이 내게 전한 말을 갑자기 알아들은 날 있습니다. 당신이 지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는지 회화나무 잎새가 유독 푸른 날들 있었습니다. 지상을 떠나는 모든 그대들이여, 전할 말을 남겨주어 고맙습니다.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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