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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정치론 지역감정해소/이종찬 의원 대권도전전략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신풍작전」/중진협지원 앞세워 관망파 흡수/포용력 부족… 군·TK거부가 변수
지난 1월 김영삼후보 내정설 파동때 노태우 대통령이 자유경선을 선언하자 이종찬 의원은 『4단계 문턱중에 첫번째를 넘었다』고 감격해 한적이 있다.
그는 그때 『경선·세대교체바람이 나를 차례차례 밀어줄 것』이라고 자신있게 덧붙였는데 이번 단일화 승리로 2차문턱을 뛰어넘은 셈이다.
이의원이 꿈꾸면서 강력히 밀어붙이는 정치구상은 「신정치바람」(그의 표현)이 경선(3차)에서 김대표를 누르고 대선(4차)에서 김대중 민주당 대표를 쓰러뜨린다는 것이다.
조직선거를 해온 여당인사가 야당전유물인 바람작전을 겨냥하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물론 민정계 반YS그룹의 총력전·조직확보도 중요하지만 대의원의 붓뚜껑을 움직이는 힘은 총선·단일화과정에서 보듯 세대교체·지역감정해소의 신풍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총선후 기회있을 때마다 『김대표가 대세론·순리론을 내세우지만 진짜 대세는 세대교체와 지역감정해소 욕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위원장들의 지역여론 탐색결과에 따르면 서울·인천·경기·충청권 등에서 신대세론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이의원의 주장이다.
이의원측은 당내역학장 우위였던 박태준 최고위원,심명보·박준병·박철언 의원 세력의 좌절도 외압분위기에 못지않게 결국 이런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짚고 있다.
이의원측은 이런 분위기가 노대통령등 여권핵심부에 흐르는 기류와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헤아리고 있다.
이의원측에 따르면 청와대연구결과 김영삼이나 이종찬카드 모두 야당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얘기다.
이의원의 한 핵심참모는 수일전 「압력에 굴하지말고 끝까지 나가보라」는 메시지를 여권상층부로부터 이의원이 받았다고 주장한다.
여권·당내의 국민표밭에 대한 이같은 자체분석을 바탕으로 이의원은 「바람을 탄 세대교체지도자」라는데 꿈과 전략을 맞추고 있다.
즉 1개월간의 선거운동기간중 기자회견,편집인협회토론회,개인연설회 등을 통해 새인물이라는 바람을 일으킨다는 야심이다.
아울러 중진협의체의 약속대로 박최고위원과 이한동·박준병·박철언 의원 등 중진들의 지원을 끈으로해서 중도·관망파를 대거 흡수해 민정계결속도 노린다는 구상이다.
이의원은 세대교체바람과 별도로 김대표 주변에 존재하는 국가경영 능력시비론을 붙잡아 「능력정치」 바람도 일으키겠다는 계획이다.
이의원은 오랫동안 세미나참석·전문인 모임연설·저술활동 등으로 자신에게 「지적이미지」가 형성되어있다고 보고 이를 국정운영능력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이의원은 이렇듯 바람작전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있지만 주변에서는 한계와 어려움을 지적하는 시각도 적지않다.
대표적인 문제가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 드러난 포용력의 결함이다.
오랫동안 대권을 준비해왔음에도 같은 육사출신의 정치인들중 몇몇은 『이의원이 단일후보가 되면 나는 YS한테 가겠다』고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했고 TK(대구·경북)그룹은 대체적으로 그를 강하게 거부하는 자세다.
군출신이나 영남출신들은 이의원이 정계진출후보인 정치행태에 대해 「자신의 인기관리에만 집착한 전형적 서울사람」이라고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의원의 인상·정치경력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기는 출생(36년·상해)에서부터 80년 11월 민정당 창당때까지다. 그는 해방후인 46년 귀국,서울 창신국민학교,경기중·고를 거쳐 56년 육사 16기로 입학했다.
작은 할아버지 성재 이시영선생은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건국후 초대부통령을 지냈고 조부 이회영씨를 비롯해 아버지(규학),작은아버지(규창) 등이 항일투쟁을 한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육사를 3등으로 졸업한 그는 64년 중정에 들어갔다가 71년 소령예편후 주영참사관을 지냈다.
2기는 민정당 창당때부터 시작된다. 80년 격동기에 중정기조실장을 지낸 그는 전두환씨의 신군부에 픽업돼 권정달씨와 함께 창당실무 주역이 된다.
이후 사무차장·원내총무(81년 1월∼85년 7월)를 지냈다. 이의원은 11대·12대국회 초기 내리 5년간 원내총무를 해 화려한 각광을 받았으나 「관제야당」과의 한정된 대화를 했을 뿐이다. 12대때 거센 신민당과의 본격적인 정치협상 시험을 거치지 못한 그의 정치력은 이제부터 시험대에 오르게된 셈이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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