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진한 검·군 선거부정 수사(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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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관이 관련된 선거부정사건인 안기부의 흑색선전물 배포사건과 군부재자투표 부정의혹사건은 그 어느 것도 속 시원한 결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흑색선전물 배포사건의 경우 검찰은 25일간이나 수사를 하고도 그 배후는 물론 동기조차도 밝혀내지 못한채 기소를 하고 말았다. 그동안 검찰이 밝혀낸 것이라고는 붙잡힌 4명이 다른 곳도 아닌 안기부내 사무실에서 같은 내용의 흑색선전물을 복사하고 봉투에 넣는 작업을 했다는 사실 뿐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범행 가담자가 더 있으며 범행이 결코 개인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조직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졌으리라는 추측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그러나 정작 검찰은 범인중 상급자인 한기용씨가 『친한 친구의 부탁때문이었다』고 주장하고 나머지 3명은 『한씨의 지시에 따랐다』고만 주장하고 있어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배후나 동기를 밝혀낼 수 없었다는 검찰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믿는 국민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밝혀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했다고 보는 것이 국민일반의 시각이며 이로 인해 검찰의 신뢰도는 결정적인 상처를 입게 됐다.
설사 검찰의 주장대로 안 밝힌 것이 아니라 못밝힌 것이라해도 신뢰도에 금이 간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다. 범인을 4명이나 잡아 25일간이나 수사하고도 납득할만한 동기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무능한 수사력이라면 그 자체로도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군부재자 투표 부정의혹에 대한 후속수사결과도 석연치 않기는 매한가지다. 국방부는 14일 국군통신사령부 부산지역 예하부대에서 대리투표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해 장교 2명과 사병 1명을 구속함으로써 처음으로 개별적이나마 부정사실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이는 국방부가 자체 조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것이 아니라 이미 언론기관에 제보돼 기사화된 사실의 사후 확인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면 부재자투표 부정의혹사건이 발생한 이후 군이 인정한 것이라고는 방공포사령관의 정신교육 녹음테이프등 분명한 증거가 있고 이미 외부에 알려진 사실 뿐이다. 만약 실제로 의심을 살만한 구석이 그 뿐이라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의혹을 풀지 못하는 것은 제보된 사실들로 미루어 비록 조직적은 아니었더라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례들이 또 있지 않겠느냐하는 생각 때문이다. 국방부의 자체조사는 그런 의심을 말끔히 씻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는 검찰과 국방부가 국민의 의혹을 씻어줄 기회는 아직도 있다고 본다. 흑색선전물수사는 기소후에도 가능하며 부재자 투표의혹에 대한 조사 역시 끝나지 않은 상태다. 검찰과 군의 명예를 위해 앞으로 의혹이 남지 않을 객관적인 수사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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