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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희망이 위안이고 빛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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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사상가며 혁명가이기도 했던 루쉰(魯迅.1881~1936)의 소설 '고향'에 나오는 말이다. 일본에 유학해 의학을 공부하다가 병든 육체보다는 중국인들의 병든 정신을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문학의 길로 전환한 루쉰의 일생을 대변하는 문구다. 한마디로 '희망은 길'이라 줄일 수 있다. 봉건적 폐습과 서양의 침탈이란 이중적 억압 구조에 놓인 중국을 변혁하는 것이 루쉰이 가야할 길이었다.

루쉰이 죽는 날까지 온 몸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희망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리가 위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희망이란 존재와 한몸으로 존재가 있으면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빛이 있다."('존재가 있으면 희망이 있다')

루쉰의 팬은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에도 많다. 신간 '희망은 길이다'는 루쉰에 푹 빠진 한국의 판화가 이철수씨와 중국문학 연구자 이욱연씨의 합작품이다. 대학시절부터 거의 20년 동안 루쉰의 책을 밑줄 그으며 읽어 왔다는 이욱연(서강대 중국문화학) 교수는 자신이 루쉰 전집 이곳 저곳에서 가려 뽑은 문구를 모아 번역했다. 루쉰이 따로 아포리즘 형식의 글을 쓴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루쉰 아포리즘'이 된 셈이다.

판화가 이철수씨의 작품이 곁들여있다는 점이 이 책의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루쉰 역시 중국 목각 판화 운동의 개척자였다. 예술과 대중을 매개해 주는 목각 판화의 성격을 루쉰은 일찍이 간파했다. 문맹자가 많았던 당시 중국에서 판화는 중국민을 계몽하는 적절한 수단이었다. 루쉰의 글과 이철수의 판화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 만나는 가운데 20세기 초반 중국의 이야기가 마치 오늘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부패한 현실, 기회주의적이고 위선에 차 있는 인간 등에 대한 루쉰의 통찰은 살아 있는 듯 날카롭다"는 이씨는 루쉰의 글을 읽다보면 "숨을 데가 없다"고 고백한다.

'희망은 길이다'와 함께 루쉰의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예문, 9천5백원)도 다시 출간됐다. 이욱연 교수가 루쉰의 산문 가운데서 뽑아 1991년 출간했던 책인데, 이번에 일부는 빼고 일부는 추가하면서 전문을 다 싣는 등 내용을 수정.보완해 새로 펴냈다. 자신의 글을 '잡감(雜感)'이라 불렀던 루쉰은 독특한 산문 형식을 선보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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