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길 사뿐사뿐…「4월의 님」마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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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군산 월명공원 입구의 흥천사를 끼고 오르는 아흔 아홉 계단을 밟노라면 겨우내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쓴 연서의 붉은 환등처럼 피어난 동백꽃을 보게 된다. 깊이 잠든 푸른 생명을 향하여 남몰래 흠모한 사탕의 속살이 뚝뚝 피를 흘리며 갯바람을 타고 서해 바다에 투신한다. 아직은 차고 음습한 매운 바람 끝이 옷 속을 파고들 무렵부터 동백꽃은 서서히 앓아온 속앓이 증후군처럼 피어나서 봄의 첫 음계를 두드리면, 벼랑에서부터 말아 올리던 바람도 자고 어디선가 방싯방싯 웃음을 날리며 시작될 것만 같은 하나의 기쁜 예감이 하얀 이를 내 보인다. 아! 마침내 획득한 사랑은 환한 햇빛을 반사하고 빛의 너울이 벚나무 가지마다 가슴에 걸린 은빛 무지개를 터뜨린다. 지상에 없는 요원한 극치의 세계에 좌정한, 그립고도 그리운 그분의 마음이 돌아설 때까지, 발등에 올려놓은 쑥뜸질을 참듯이, 참아온 저리고 애절한 기원이 풀리어, 하얀 나비 떼처럼 춤을 춘다. 숨막힐 듯이 날아든 하얀 나비 떼. 아니 파랑, 노랑, 진 자주 빛의 환시 된 나비 떼들이 폭설처럼 날아든다. 입산 수도하여 세속적 가치를 비웃는 사미승의 삭발한 목덜미 근처를 붉히며 찾아오는 군산의 4 월.
군산을 빠져나가는 통로를 따라 꽃길이 열리고 신들린 듯 자지러진 화해의 손짓이 멀리 퍼져나간다. 오라고 오라고 목놓아 부르는 군산의 봄은 월명공원을 시발점으로 팔마제를 지나, 공설운동장에서 절정을 이루고 옥구·대야·김제·이리·전주로 뻗어내려 순결의 하얀 손수건을 흔든다. 지난겨울 실연의 상처로 가슴아픈 그대는 이곳에 오시라. 좌절은 다른 생성을 위한 아름다운 희망을 싹틔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꿈을 꿀 수 있으리라.
「눈을 감고 입·코·귀를 막으면 부웅 뜹니다./먹은 것 다 토하고 속을 다 비우면/지침 새 없는 허공으로 더 높이 뜹니다./떠돌이 혼백으로 가득 찬 지상에서/천상까지 빈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갔다온 사람도 모릅니다.」<이병훈의 시「꿈」>.
우리는 꿈속을 부유하는 애벌레 같다. 청빈의 은발을 날리며 고향을 지키는 한 시인의 절묘한 시상이 살아있는 한 문물을 향하여, 군산 산업기지를 향하여 하늘로 바다로 육지로 사람들은 몰려오리라. 버려 두었던 낙후된 땅에 떠오르는 햇살 같은 꽃잎이분분한 4월에 오실 님이여! 지역갈등을 넘어선 통일의 길이 트일 이곳에서 한풀이 한마당 풍장은 꽃길을 열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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