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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날」맞는 신문에바란다/김태길 서울대명예교수·철학(특별기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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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언론부터 상업주의 벗어나야”/황금만능 사회병리 제거 선봉장으로/진실·정의실천위한 노력과 병행 필요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이 어려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세하는 사람들도 있고,어려운 현실을 고쳐가는 방향으로 기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에서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말해 후자의 진영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개선 됐다지만 미흡
제6공화국이 된 뒤로 그전보다 좋아진 것이 무엇이냐고 자문했을때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언론」이다. 언론인들 자신의 노력만으로 그렇게 된것이 아닐지도 모르나 언론이 어느정도 제자리를 찾게된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 매우 다행한 일이다. 비리를 고발하고 여론을 이끌어감에 있어 근래 언론기관,특히 신문이 한 일이 적지 않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언론이 맡고 있는 책임의 중대함을 감안할때 오늘의 언론에 오로지 찬사만을 보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때마침 신문의날을 맞이함에 즈음하여 우리나라신문에 대해 평소 아쉽다고 느껴운 바의 일단을 피력하고자 한다.
언론,특히 신문이 수행해야할 중대한 임무의 하나는 사회현실 속에 만연해 사회를 병들게 하는 비리를 고발하고 나아가 그 비리를 제거함으로써 사회를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횃불노릇을 하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사회를 파괴하는 비리의 대부분은 돈에 대한 탐욕과 연관을 가졌다.
바꾸어말하면 현대사회는 금전이 지배하는 문화를 형성함으로써 병들기 시작했으며 현대사회의 병폐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금전을 제일로 생각하는 가치풍토를 우선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금전만능의 가치풍토를 극복한함에 있어 언론,특히 신문이 선봉장의 구실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신문이 금전만능의 가치풍토와 싸우는 선봉장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신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금전 제일의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신속보다 정확 중요
더욱 알기쉽게 말하면 신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상업주의에 젖거나 돈벌이에 급급하여 금전제일주의에 앞장서면 언론기관으로서의 신문사 또는 언론인으로서의 신문기자가 그 본연의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수행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대학이 상업주의의 함정에 빠지면 교육기관으로서 제구실을 할 수 없듯이,의사가 상업주의의 노예가 되면 인술자로서는 죽게 마련이듯이,신문사나 방송국이 돈벌이에만 정신을 팔면 그 나라의 언론은 언론으로서의 소임을 포기하는 결과를 부른다. 개인으로서의 신문기자나 방송제작자가 돈맛에 빠져들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신문사가 상업주의와 무관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몇몇 신문사에서 앞다투어 찍어내는 스포츠 신문의 만화를 읽어본 사람은 내 생각에 찬동할 것이다. 한국에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여성잡지와 주간지에도 형편없이 야비한 내용의 글 또는 그림이 실린 것을 본 사람은 내 생각을 수긍할 것이다.
신문사가 상업주의에 골몰하면 좋은 신문을 만드는 일보다도 잘 팔리는 신문을 만드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좋은 신문이 팔리기도 잘하는 풍토라면 문제는 적겠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풍토가 아니다. 좋은 신문보다도 흥미로운 신문을 선호하는 독자들이 허다하며 지성적이고 건전한 읽을거리보다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읽을거리를 흥미롭다고 여기는 독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지나친 호들갑 역효
독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에는 공정하고 절제있는 정론은 적합하지 않다. 시는 시고 비는 비라고 하는 식의 중용을 지키는 글은 도무지 흥미가 없다. 극단적인 언어를 구사하며 치고 받고 할퀴어야 한다. 자극을 갈망하는 독자들의 구미에 영합하다 보면 정론은 설 자리가 없고 오직 흑백논리가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여기서 본의 아니게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기며 신문으로 인해 보는 피해는 호소할 길 조차 없다.
상업주의에 빠진 신문은 호들갑떨기 쉽고 국민을 오도할 염려가 많다. 남과 북이 어떤 문서 하나만 교환해도 신문은 금방 통일이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이산가족들은 상봉의 날을 초조하게 기다리며,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금강산 구경의 꿈에 부푼다.
신속함과 정확함은 둘다 신문보도의 생명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신속함보다도 정확함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나 상업주의의 치열한 경쟁 소용돌이에 빠진 신문 보도는 정확성보다도 쾌속성을 더욱 앞세운다. 신속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사실확인도 하지 않고 추측으로 기사를 쓰게 한다.
언론이 진실·정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할때 오늘의 현실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바로 상업성에의 함몰에서 탈피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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