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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구역 탈세정보 "첨병"-국세청 조세범칙 조사요원 이현희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여성사우나·여성전용 헬스클럽·피부미용실·여자화장실」-.
어떤 남자라도 무시로 드나들 수 없는 금남구역이다. 이 때문에 국세청은 이들 지역을 세정의 사각지대로 분류해 놓은 지 오래.
지금까지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그리 많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국세청이 세무조사나 세무사찰을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해 여성조사인력을 아예 키우지 않은 까닭이다.
이처럼 여성조사인력이 없어 애태우던 국세청에 백만 원군이 생겨났다.
여성조세범칙 세무사찰 전문요원 4명이 탄생한 것이다.
국세청 조사국에서 지난 90년 7월부터 근무하고 있는 이현희씨(36))도 그중 한사람
1백60cm의 크지 않은 키게 계란형의 예쁘장한 얼굴로 가냘픈 인상마저 주는 이씨가 금남의 지역을 내집 드나들듯하며 탈세정보를 캐내는 첨병역할을 해내고 있다.
『처음에 조사를 나가면 상대방에서 왜 여자가 따라왔을까 하고 궁금하게여져요 그러나 여자가 끼니까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조사 받는 상대방의 반발을 쉽게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이씨가 밝히는 납세자의 반응도 천태만상이다.
영치를 하기 위해 집에 들어서면 어떤 사람은 넘어갈듯 고함을 지르며 국세청 욕을 해대고, 어떤 이는 카세트 성경말씀을 크게 틀어놓으면서 자신은 평생 죄짓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또 더러는 문을 아예 따주지 않아 무려 7시간을 집밖에서 기다리게 하기도하고 일부는 울다가 웃다가하면서 재산목록 등을 못 적어가게 훼방을 놓기도 한다고 한다.
이씨는 능수 능란하게 변신을 잘해 간혹 남자직원들과 함께 부부로 위장 필요한 정보를 캐내기도 한다.
작년 말 옷값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의 한 옷가게를 동료 남자직원과 부부로 가장해 1주일간이나 드나들어 업소 당 연간 매출액이 억대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들춰냈다 .
이씨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여성사우나·피부미용실 등을 찾아가 몇 시간씩 눌러앉아 있곤 한다.
돈 깨나 쓰는 여성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다보면 탈세정보가 하나 둘 걸려들기도 하는 데다 탈세자로 지목된 여인의 씀씀이를 추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루는 고급 미용실을 갔더니 전신 마사지 한번 하는데 80만원 하는데도 있다는 얘기를 누군가가 하더군요. 장소를 기억해뒀는데 조만간 한번 가볼 참이에요』
어떤 장소에 가든 신분이 들통나지 않고 주어진 소임을 다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개발해놨다는 이씨가 세금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7년 3월.
그후 서울시내 일선세무서에서 근무하다 지난 90년 초 조세범칙 전문요원으로 선정돼 8주간의 특수교육, 에어로빅·합기도·정보학 등)을 받고 국세청의 노른자위인 조사국에 배치됐는데 오는 7월 1일이면 조세범칙 특수요원 수습딱지를 뗀다. 정식 조사요원이 돼 활동무대를 더욱 넓힐 수 있게 된다
『여자 이현희가 아닌 세무공무원 이현희로 봐달라』고 특별주문까지 하는 이씨는『앞으로 필요하다면 어떤 일도 가리지 않고 하겠다』고 말한다.
예컨대 술집종업원으로 변장해 탈세정보를 캐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씨는 능수 능란한 조사요원이 되기 위해 일본과 미국의 여성조사요원은 어떻게 활약하는지 잡지나 비디오를 통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리를 찾아 고생한끝에 공정과세를 이룬다면 세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주경야독한 끝에 지난 86년에는 외대 노어과를 졸업했다.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매주 4시간동안 북한산을 오르는 이씨는 지금껏 일에 파묻혀 사느라 미혼이다.<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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