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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용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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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 선생은 월간 잡지 '샘터'에서 오래 근무했다. 대학로에 있는 샘터 편집실에 들르면 그는 늘 박속 같은 웃음으로 맞았다. 샘터사 건물에 딸린 '밀다원'에서 커피를 사주며 이것저것 묻곤 했다. 선동열 투수가 잘 던졌을 때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이 몇 승인지 물었다. 타이슨이 이긴 다음에는 전설적인 철권(鐵拳) 조 루이스의 통산 전적을 알고 싶어했다.

정 선생은 매일 아침 스포츠 신문을 읽었다. 작품에서 사용한 한 자 한 획이 다 보석과 같은, 언어의 예술가였던 그는 기사를 읽다가 자주 눈살을 찌푸렸다. 지나치게 살벌한 표현이 거북했던 것이다. 특히 축구에서 수비수가 상대 공격수를 잘 막았을 때 등장하는 '족쇄를 채웠다'는 표현에 진저리를 쳤다. '무등산 폭격기'라는 선동열 투수의 별명도 못마땅했을 것이다.

야구.축구.농구.배구 등 한국의 주요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 적잖은 수의 외국인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들을 흔히 '용병'이라고 부른다. 용병은 '보수를 받고 복무하는 군인'이다. 그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용병이라는 부름말에는 '돈에 팔려온 선수'를 깔보고 차별하며 우리와 엄격히 구분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12일 열린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자신에게 심한 반칙을 한 상대 선수와 심판을 손찌검한 LG의 퍼비스 파스코 선수도 용병이었다. 그는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나는 용병이라서 차별을 받았다. 나를 위협하는 심한 반칙을 심판들이 못 본 체했다"고 호소했다. 그의 동료 현주엽 선수도 "국내 선수끼리는 함부로 못할 심한 반칙을 외국인 선수에게는 쉽게 한다"고 파스코 선수의 말을 뒷받침했다.

'파스코 사건'을 예견했던 걸까. '한국인권행동 언론모니터모임'(http://cafe.naver.com/hrpress; 이하 언론모니터모임)은 지난달 23일 '용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언론을 '스포츠를 전쟁으로 몰아가는 언론'이라고 비판했다. 용병이라는 용어가 군사문화를 확산하고 내.외국인 분리의 수단으로 악용되며, 인간을 상품화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지적과 비판은 매우 설득력 있다.

군사 문화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스포츠 보도에만 군사 용어가 자주 쓰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언론모니터모임에 따르면 올해 1월 한 달 동안 주요 신문은 스포츠를 보도할 때 기사당 적게는 1~2회, 많게는 23회까지 '용병'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한국인 용병 박지성'이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용병 이승엽'이라는 식의 기사는 보기 어렵다.

억압과 폭력을 혐오한 정채봉 선생은 용병이라는 표현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리라. 혹시 "그리 나쁜 표현은 아니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만약 그랬다면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정 선생이 스위스 용병을 연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바티칸 교황청 위병으로 근무하는 스위스 용병은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목숨 바쳐 호위할 때부터 성실하고 용맹하기로 이름났다.

허진석 중앙SUNDAY 스포츠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