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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경찰수소문에 "낙점" 알아|TV사회 여교수도 전격 스카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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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먼저 6년 동안이나 유정회 총무를 지낸 이영근 전 의원(68·현 민족중흥회 사무총장)의 유정회 참여과정을 들어보자.『그때 나는 7대의원(공화당·전국구)을 지낸 뒤 김종필 국무총리의 비서실장으로 재직 중이었어요. 하루는 청와대비서실의 김정렴 실장이 나를 찾더군요. 청와대로 들어가니 세 통의 서류봉투를 주더군요. 김 총리와 나, 그리고 김진봉 총리실정무비서관의 구비서류였어요. 사실 그 며칠 전에 다른 이로부터「낙점」사실을 귀띔 받았었기에 별 놀라움은 없었습니다. 김 총리와 김 비서관에게 서류를 전달해 주었지요.』

<"청와대서 찾는다">
그러나 정계에 지인이 많았던 이씨와 달리 학계에 몸담았던 강문용씨(70·전 성균관대 법대교수) 같은 경우는 인선자체가 뜻밖이었다.
『그해 입학시험 사무를 무사히 마치고 3월 초하룻날 동료교수 2명과 함께 인천 연안부두로 놀러갔습니다. 가족들에게도 인천에 회를 먹으러 간다고만 했지 숙소는 알리지 않았어요. 한 사훌 푹 쉴 셈이었습니다. 이틀동안 망중한을 즐겼는데 사흘째 되는 날 숙소인 올림프스 호텔로 웬 경찰관이나를 찾아왔어요.「서울로 같이 가자. 이유는 말하기 어렵다」는 거였어요. 불쾌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 다그쳐 물었더니「청와대에 연락해보시라」고 해요. 알고 보니 서울 우리 집에 이틀간이나 연락한 끝에 경찰을 풀어 인천부두 가를 뒤졌더군요.
서울에 도착한 후 반도호텔에서 유혁인 청와대정무비서관을 만났습니다. 3월 3일로 기억되는가, 그 날이 서류마감 일이라는 거예요. 그때서야 유신헌법 입안과는 전혀 무관했던 내가 공법학계의 대표케이스로 추천됐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고심 끝에 승낙서 등 구비서류를 작성했습니다. 준비된 사진이 없어 청와대에서 불러온 사진사가 즉석 증명사진을 찍어 주었지요.』
백두진 당시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이던 정재호씨(62·현 헌정회 사무총장)도 유혁인 비서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청와대에 들어가니 홍성철 정무수석(전통일원장관)과 유 비서관이 같이 맞아 주더군요.「정 실장, 앞으로 큰 일 맡아 주셔야하겠습니다. 축하합니다」라는 거예요.

<박대통령 눈에 들어>
「공식발표이전까지 절대보안」을 강조한 탓에 정씨는 윗사람인 백두진 의장에게도 낙점사실을 발설하지 않았다고 한다. 3월 5일 박대통령이 발표한 추천후보자 명단에는 백 의장(얼마 후 초대 유정회장이 된다)도 들어있었다. 백 의장 역시 조석으로 얼굴을 대하는 정씨에게 자신의 거취를 숨겼던 것이다. 두 사람은 5일 오전 멋쩍게 웃으며 축하악수를 나누었다. 모 언론사 간부로 재직 중 발탁됐던 S씨는 김성진 청와대대변인이『식사나 같이하자』고 서울시내 한 호텔로 초청했다. 특별한 화제도 없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하며 식사를 마친 뒤 나서는 김 대변인이『돌아가서 뜯어 보라』며 누런 서류를 하나를 내밀었다.『특종기사 자료? 촌지? 여하튼 궁금합디다. 내가 유정회에 들어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어요. 화장실에서 뜯어보니 웬 승낙서니 이력서니 하는 서류들이 들어 있더라고요.』
S씨는『내 인생 행로를 바꿔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다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서류를 작성했다. 그런데 제출한 서류 중「나의 소견」이라는 제목의 서류가 작은 말썽이 됐다.
『나는 그 서류에 기자직을 포기하게 된데 대한 회한, 몸담고 있는 언론사에 대한 애착 등등 개인적인 내용을 잔뜩 써냈어요. 청와대에서 한 인사가 내게 전화를 하더군요.「나의 소견」난은 선출자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을 상대로 하는 정견발표내용을 적어야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사람은 한마디 덧붙이더군요.「당신이 쓴 글을 보니 우리가 못할 짓을 하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임기 3년의 제1기 유정회 의원 73명중에는 8명의 여성이 포함돼 있었다. 이중 서영희씨(53·현 경희대교수)는「TV낙점」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져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어학에도 뛰어났던 재원 서씨는 당시 KBS-TV의 인기프로그램『주한외교사절을 찾아서』를 맡아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우연치 이 프로그램을 본 박대통령의『똑똑한 여성이구먼』이라는 한마디에 금배지 감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비서실로부터 서씨의 이름을 통보 받고 당황한 중앙정보부 정치 팀은 서씨가 출연한 프로그램의 녹화필름을 구해「인물연구」를 하는 등 법석이었다고 한다. 서씨는 본인이 60년대 초부터 육영수 여사와 맺었던 오랜 인연이 추천배경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서씨에 대한 통보는 유혁인 비서관이 담당했다.

<"변절" 비난 걱정>
발표된 추천후보의 명단에는 야당(신민당)의 당료 두 명이 끼여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김용성·함종찬씨였다. 이중 김씨는 현역의원(8대·신민당전국구)이자 당 정무위원을 지냈기에 더욱 구설수에 올랐다. 김 전 의원(68)의 회고.
『맹세코 뒷거래는 없었습니다. 당시 나는 2·27총선을 앞두고 막판 공천(서울 서대문)에서 탈락해 실의에 빠져 있었어요. 초대 참의원을 지내고 10년을 쉬다가 8대에 전국구의원을 했는데 그때 공전탈락으로 또 6년을 허송세월 할 형편이었습니다. 정치해본 사람은 내 심정 알 겁니다. 3월 1일 김정렴 비서실장이 나를 청와대로 초청하더군요.「각하께서 김 의원 걱정을 많이 하신다. 헌법개정으로 이번 의원임기가 6년이 됐는데 너무 길지 않느냐. 유정회에 모시는 게 각하의 뜻이다. 야당에서 주장하던 그대로 유정회에서 활동해도 무방하다 신다」 는 요지였어요. 집에서 며칠을 두고 고민했어요. 변절이니 훼절이니 하는 말들이 자꾸 떠올라 괴롭더군요. 결국 응낙하고 말았습니다.』
73년 3월 10일 유정회는 신문회관에서 첫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날은 미니스커트·장발을 단속하는 개정경범죄처벌법이 발효된 날이기도 했다. 당시 서울의 중앙극장은『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국제극장은『에덴의 동쪽』을 상영해 장안 청춘남녀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박대통령은 유신이라는 강을 건너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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