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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 “야, 너두 죽어봐”…김재규 발작증 끝내 터졌다 (74) 유료 전용
1979년 10월 26일 밤에서 27일 동트는 아침까지 나는 청와대에 있었다. 나는 1층에서 마주친 김계원 비서실장을 끌고 2층 그의 사무실에 올라갔다. “김 실장은 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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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유신에 분노한 김일성 “이후락이 나쁜 놈, 처치해라!” (52) 유료 전용
유신(維新) 체제를 이야기하려니 불현듯 1987년 6월에 겪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반독재 민주화 열기가 전국을 휩쓸던 그때 대전의 한 교회에서 특강하게 됐는데 대학생 수십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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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도 0003…YS 위해 '핏대 24년' 이원종 전 정무수석[1939~2021.1.31]
고(故)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2018년 6월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1월 3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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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DJ가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없애려다 살린 이유
강민석 정치에디터 김대중(DJ)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1997년 말~98년 초) 얘기다. DJ는 서울 삼청동 당선자 집무실 외에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 스위트 룸을 사무실로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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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전 통일선언문 극비리 준비”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이 준비했던 ‘통일 선언문’의 일부. 오른쪽 액자 속 인물은 이 선언문 초안에 기여한 동훈 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차관이다. 액자 위의 쪽지는 박 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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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59) 10·26사태 ②
1979년 10월 27일 청와대 본관 대접견실에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졌다. 문상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최규하 국무총리, 구자춘 내무부 장관, 김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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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의 입' 9년] 24. 남북적십자 회담
▶ 1972년 9월 남북적십자회담 본회의를 위해 서울에 온 북측 대표 윤기복 북한적십자사 자문의원(右)이 경기중학교 동창이라는 신형식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972년 7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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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특종]박정희 사후 20년만에 공개 - 국토개조개혁
박정희는 조국의 미래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고 구체적인 그랜드 디자인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구상대로 국가를 성공적으로 바꾸고 경영해 오다 10·26이라는 돌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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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박정희시대]43.철권통치…"정치는 낭비 행정이 우선"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은 스스로를 정치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모임에서 누가 정치얘기라도 꺼낼라치면 말을 막으면서 하던 얘기가 있다. "나는 행정가지 정치가가 아니야. 정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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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박정희 대통령의 공천방식
국회의원 후보를 내는 공천(公薦)은 널리 인재를 발탁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후보는 당선되면 입법부를 구성하게 되니 누구를 공천하느냐 하는 것은 국가지도층의 수준에도 많은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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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이 전화로 부총리 호출|청와대 파견 공무원들 원대 복귀
25면에서 계속 조금 있으니 이번에는 중무장한 군대(9사단 병력)가 중앙청으로 들이닥쳤어요. 날이 캄캄한 가운데 청사마당에 군인들이 도열했지요. 여하튼 이북군대야 아니겠지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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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개각」 새 내각 명단
●*직위:총리 이름:현승종 나이:73 출신:평남 개천 학력·약력:경기대법과 고대교수 성균관대총장 한림대교수·동총장 한국교총회장 ●직위:부총리(경제) 이름:최각규 나이:59 출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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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박대통령|"튀면 꺾는다" 치밀한 용병술
『직감적으로 「아이고 한판 붙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능히 그럴 수 있는 박실장이었으니까요. 당시 이문동에 있던 부장집무실로 가 여벌의 옷을 챙져들고 경호실장 방을 찾아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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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여 의원들 (7돌 기념 만찬) 노래자랑|"유신의 끝" 서곡인가
정재호 유정회 대변인도 자타가 공인하는 노래 실력이었다. 지명 당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는 무대에 불려나간 뒤 노래를 뽑기 전에 즉흥 멘트를 몇마디 했다. 『대통령 각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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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총리임명 대통령직 대행케" 종신집권 위한 연막 술로 보기도
박대통령은 아침 일찍 지만 군과 함께 해변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선우 비서관과 차 한잔을 나누고는 『바닷가로 산책이나 나가자』고 했다. 『금방 다녀오지 않으셨습니까』고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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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경찰수소문에 "낙점" 알아|TV사회 여교수도 전격 스카웃
먼저 6년 동안이나 유정회 총무를 지낸 이영근 전 의원(68·현 민족중흥회 사무총장)의 유정회 참여과정을 들어보자.『그때 나는 7대의원(공화당·전국구)을 지낸 뒤 김종필 국무총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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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강풍」속 통합야당 실험무대(14대 전초전 현장에 가다:10)
◎부산/민정계 “무소속출마 불사”로 「다여현상」/분구지역 김영삼대표 줄대기/야 현역에 5공세 강력도전/동구/민자당서 「이기택 응징」별러/해운대 15개 선거구인 부산지역은 YS(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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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면에서 계속
오수석이 박대통령의 마음을 점령한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명쾌한 분석력이라고 한다. 오씨는 『내 입으로 내 이야기를 하려니 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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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청와대비서실:1)
◎“내각속 내각” 정치명암 재조명 제3공화국 이래 대통령중심제를 하면서 우리나라를 움직여온 중요기관을 꼽으라면 여당·내각·중앙정보부(안기부)·대통령비서실·경호실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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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혁인 주 포르투갈 대사
기자때부터 고박정희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을 맺어 유신시절 청와대 정무 제1수석 비서관으로 당시 정치막후 실력자 중 한사람. 원만한 인품과 체제내에서 온건한 입장에서려한 평소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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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80년 서울의 봄(2)"계엄의결 순간에도 「유고」내용 몰랐다"
79년 10월27일 새벽 4시20분 김성진 문공장관은 중앙청 기자실 흑판에 정부발표문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 『79년 10월26일 23시에 긴급 소집된 임시국무회의는 대통령의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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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각하께서 저격당하셨습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도 한다. 우리는 내일을위해 오늘을 생각하듯이 오늘을 위해 어제를 생각한다. 과거 속엔 역사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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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 어디서 무엇하나|「10·26」7주 당시 현직들의 근황
또 다시 10·26을 맞는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18년 장기집권과 유신통치에 종지부가 찍힌 지 7년. 강력한 권 부의 자력에 의해 집결됐던 당시의 고관 현직과 권력주변 인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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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개헌…오욕 굴절로 점철|제헌절에 되돌아본 얼룩진 헌정사
개헌 논의의 한복판에서 맞는 제헌절은 헌법의 구김살을 아픔으로 되새기게 한다. 흔히 하나의 사건은 무수한 역사적 요인들과 연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헌법이 정치의 중심 문제가 된